작성년도: 1996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시골...농촌밖에 모르시는 89세 외할머니
지난주 일요일...
시골에 내려갔다 오는길에 외가집에 들려 외할머니를 모시고 올라왔습니다.
연세가 89세... 내년이면 90이 되시는 나의 외할머니...
얼굴의 주름살이 90을 바라보는 나이를 증명하고 있었지만... 정신만
은 또렸한 모습이셨죠...
?하나? 딸 여섯에 아들 하나의 어머니...
이모가 여섯... 외삼촌 하나... 나의 외가쪽 가족이다.
그중에 우리 어머님이 큰딸... 68세 되었다.
실제로 외할머니가 낳은 자식은 열둘 이었단다.
옛날에 병원도 없고 치료도 할수없는 시대라 많은 자식을 잃으셨다.
어머니 위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다 키워서 잃었다고 가끔 외할머니
게서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다.
"참 똑똑하고 잘생긴 녀석이었는데 일곱 살 되던해...다 키웠다가 전염
병에...그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고 하더니...
아직도 옛날의 그모습이 생생한지 큰아들의 모습을 생각하시며 눈시울
이 뜨꺼워 지신다.
그 자식뿐 아니라 어려서 일찍 죽은 모든 자식이 모두 눈에 생생히 떠
올라 당신 가슴에 묻혀 있었다.
딸을 시집을 보내시고도 자식을 계속 낳으셔서 우리 집의 형제들은 외
가집에 가면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이모들... 외삼촌과 친구처럼 놀곤
했다.
그래서 국민학교시절... 방학때면 30리가 넘는 외갓집을 산을 넘고 강
을 건너 놀러갔는지도 모른다.
항상 같이 놀수있는 또래의 외삼촌과 이모들이 있었기에...
또 산하나 넘으면 시집간 둘째 이모네... 셋째 이모네가 있었다.
그곳에 가서 몇일밤을 지내고 오면 방학이 어느새 나가고 몇일 안남아
있었다.
?둘? 많이 가르치면 불효자식 된다고 농사짓게 한 외아들...
나보다 3살 많은 외삼촌은 외아들이었다.
20년전에 돌아가신 외할버지는 한학을 하신 분으로 자식 교육에 대해
서만은 한가지 신조가 있으셨던 모양...
국민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외삼촌은 당연히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
으로 알고 있었지만 외할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소식을 들은 당시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며 진학 시킬
것을 설득하였다.하지만 외할버지의 생각...
"아들 하나 있는것... 배우게 시킨다고 객지에서 떠돌게 하고 많이 배
우게 되면 부모를 결국은 버리게 되지..."
선생님이 외할버지를 간곡히 설득 하는데도 실패하여 결국은 외삼촌은
서당에 다니며 한자를 배우고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는 곁에서 그런 외할버지 모습에 화가 나고 아들하나 있는 것
못 가르치는 것을 안탑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우리 옛날 아내들의 위치였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 자식 교육에 관한한 남편이 할 수있는게 하나도 없는 지금 현
실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 이다.
현재 나도 자식 교육에 관한한 내가 할 수 있는 월급 타다 주는 것 뿐
이니... 옛날에 아내의 위치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할버지 생각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외삼촌이 많이 배워 출세를 했다면 우리 외할머니를 지금처럼
잘 모시고 살고 있을수 있을런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나름대로 성공한 농사꾼이 된 외삼촌...
꾸준히 특수작물... 축산업등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우리 형제들보다 생활면에서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계시
다. 년소득으로 따지면 따라가지 못하니...
한시도 부모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모시고 사는 외삼촌을 비록 공부
는 많이 못했지만 그이상의 보람된 일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셋? 아직도 낮에는 밭에서... 저녁에는 밥짓는 외할머니...
90이 다되신 우리 외할머니...
아직도 낮에는 밭에서 일거리를 찾아 다니신다.
생강밭에 풀이 났는지... 돼지 먹이 소먹이를 챙기신다.
저녁에는 저녁준비까지 손수 차려놓고 아들 며느리를 기다리시는 부지
런하기로는 동네에서 소문이 나셨다.
그 아들도 마찬가지...
새벽 일찍 밭에 나가고 논에 나가 농사뿐이 모르는 소문난 농사꾼이었
다. 물론 성공한 농사꾼이 되어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모아둔 돈으로 근처 시내에 상가 대지도 사놓았고 외숙모는 시내에서
상가를 마련하여 장사를 하고 계시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역활이 낮에는 밭에서 저녁에는 저녁 준비를 해 놓
으시고 아들 며느리 손자를 기다리시는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계시기에 외삼촌 가족이 열심히 살수 있는 생활이 가능한
지 모르지만...
농사 짓는게 그렇게 재미있고 좋다는 외할머니... 오직 땅뿐이 모른신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외할머니를 닮았는지 70노인인 우리 어머니도 서울 생활하시면서
공터를 찾아 호박을 심고.... 지금 사시는 건물 옥상에는 고추농사 상
추 농사를 지어 우리가 갈때마다 가득 담아 주신다.
농사에 천부적 소질을 타고 나셨다고 할까?
외할머니를 모두 닮았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생활이 지금 까지 건강을 지켜 준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든다.
?넷? 늣게서 외손자들 대학 공부에 신이난 외할머니...
외삼촌에게는 아들이 둘...
모두 다 어른이 된 청년들이다.
올해 스물하나된 작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게된 사연...
모두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시켰다. 모두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외삼촌은 대학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고 실업계로 보냈다.
큰아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근처 회사에서 취직하여 출퇴
근하며 다니다가 군에 갔다.
작은아들도 지방에 있는 실업계에 들어가 2학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학교근처에 있는 깡패들의 행패로 학교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온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도와주다가 일년전 작년에
갑자기 대입검정고시를 치르겠다며 일년만 공부하게 해달라고 했다.
여태까지 학원 한번 보낸적 없는 외삼촌은 원대로 해준다며 일년을 공
부시키기로 하였다.
일년후 작은 아들은 대입 검정고시 합격후 바로 수능을 치룬후 대전에
있는 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여 지금 신나는 대학 생활을 하고 있댄
다. 그런데 문제는 또 생겼다. 지난 1월 군대를 제대한 큰아들이 동
생이 대학가는 걸 보고 자기도 가겠다고 일년만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
는 것이다.
이제는 여유가 있으신 외삼촌...
"그래... 네가 하고 싶다면 해봐라... 니들이 하고싶다면 학원을 보내주마.
한번 밀어줄테니 해봐라.."
그래서 외할머니는 신난다. 아들 하나 있는것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
한것 평생 한이 되었는데 손자들이 대학 간다니 얼마나 좋은지...
유치원 한번 제대로 안다니고 그 흔한 학원 한번 안다니고 대학에 들
어간 작은 손자...
동생이 대학을 가는것 보고 뒤늣게 시작한 큰손자... 모두 잘 될 것으
로 굳게 믿고 있다.
?다섯? 5년만에 서울의 딸네로 나들이...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는 외할머니...
내차를 타고 큰딸네 바로 우리 어머니집으로 나들이 가신다.
그동안 거동도 불편하고 시골집이 편하다고 자주오시던 큰딸네에 왕래
를 못하시었다.
주말이면 항상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우리 아버지 즉 사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걸 옆에서 들었다.
가장 기억이 남는일을 하나 말씀하시는데...
"자네 부부하고 제주도 구경가서 관광했을 때가 이제 꼭 십년전이었지
그때 제주도하고 지금은 많이 변했을 거구만..."
사위덕에 비행기 처음 타보았다며 우리 아버지에게 은근히 고마워 하
신다. 이제는 다리가 편찮으셔서 많이 못 걸으신다.
"건강하시다면 이번 동남아 여행가는 데 같이 모시고 갔으면 좋겠지만
...참 아쉽구만유"
아버지가 한말씀 하신다.
여행도 건강할때나 가능한 것 같다.
90이 다되신 외할머니는 외손자들 생일을 다 기억 하신다.
"니가 낳은날은 동지달 초엿세 되는 날이지... 농사 다짓고 추워 질때
태어낳어..."
그리고는 우리집 형제들 6남매 생일날을 모두 말씀하신다.
참 기억력이 뛰어나신 외할머니...
그 많은 외손자...외손녀들 생일 거의 기억한다.
한번 가신 곳은 절대로 길을 잊어 먹은신적이 없다.
우리집에도 한번 오셨는데... 그곳이 어디 쯤인지 모두 기억 하신다.
기억력이 좋기로는 동네에서 인정한다.
서울이란 곳이 매일 새로 건물을 지어 찾어오신는게 옛날 같지는 않을
것만은 틀림 없다.
딸네집 근처에 도착할때 쯤...
"거의 다온 것 같구나... 쪼그만 더가면 되지?"
또한번 놀랄 수밖에... 90이 다되셔도 정신이 저렇게 또렷하시다니..
문앞에서 큰딸 나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
"엄니... 얼마나 고생하셨대유..."
손을 꼭 잡으시는 우리 엄니...
"난 차 타는게 좋다. 하나 고생 안했다."
70이 다된 딸도 역시 어머니가 좋으신 모양이다.
오랜만에 큰딸네에서 지내시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시골집 이야기... 우리 외가집 외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구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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