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공원 중국 산시성의 면산 여행기...
중국면산여행
추석연휴 4박5일 동안 중국면산을 떠나 돌아왔습니다.
이번여행은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어 몸컨디션이 좋지않은 상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 감기는 여행내내 괴롭혔고 주로 여행중 버스속에서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직접 노트북에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기운이 빠지고 감기로 혼란스러워 호텔에 들어가면 쉬기 바빴습니다.
여행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중국의 면산은 중국산시성에 있는 산으로 중국 춘추시기 진나라의 군자이고
최고의 충신인 개차주를 기념하기위해 세운 개공사당과 운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한식,청명이 중국 충신 개차주가 불에 타죽은 것을 을 기리기위해
찬음식먹는 관습이 우리나라에도 건너와 되었다고 합니다.
--------------------------------------------
언터넷자료에서 본 개자추 전설(介子推 傳說)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이드가 설명한 내용과 거의 똑같아 옮깁니다.
중국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으나, 개자추는 그를 마다하고
면산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 우리의 한식 풍속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을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
위에 쓴글은 인터넷 자료 검색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옮긴 것이지만 관광가이드가 설명한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디.
중국에서 많은 전통들이 한반도로 내려와 한국문화를 만들은 것은 주지할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깍아지른듯한 절벽 계곡이 이어지는 이곳에 관광지로 개발한 사람은 중국의부호의 한사람인 것으로 이곳 주산물인
석탄으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만든 면산 관광지... 절벽위로 잔도를 만들고 절을 수리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게 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경치좋은 이런 풍경에 금방 빠져버립니다.
중국의 좋은 풍경은 나름대로 뽑아서 다니고 있는데 대부분 비슷한 풍경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백미터의 절벽, 기암괴석의 형상들이 대부분이지만 조금씩 특색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개자추는 면산에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른 주군(진문공)에 의해 타 죽었는데 이는 개자추를 시기하는
신하의 모해로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면산을 올라가면 개자추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이곳저곳에 있습니다.
절벽을 깍아 사상을 세우고 충효사상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의 정신의 출발이 이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불교와 도교가 함께 하는 절이 대부분입니다.
이곳 절경은 태항산과 비슷한데 그곳만큼 아기자기한 풍경은 못가졌습니다.
단순히 4-6킬로 반경으로 한 능선에서 이뤄진 산 같습니다.태항산 같은 경우 몇십킬로씩 이동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특색을 갖고 있는 풍경을 감상할수 있었는데 이곳은 한곳에 절벽과 협곡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이틀동안 면산 주위를 트래킹하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틀동안 묵었던 운봉서원호텔...
면산의 절벽에 붙여 만든 호텔로 입구 로비와 객실로비가 따로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에 몇안되는 절벽호텔로 생각되어집니다.
절벽위에 세워진 잔도...
사진에서 보면 무섭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넓어서 누구라도 다닐수 있는 평범한 계단길로
생각됩니다.
바로 멀리 아름다운 절경을 보며 오르내리면 어느사이 금방 시간이 지나갑니다.
하늘에 세워놓은 도시처럼 운봉사원이라는 호텔... 아마도 면산에서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합니다.
절벽에 붙어 지은 호텔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데...이는 면산의 건물들이 모두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하늘 높이 선 도교사원 따뤄공(大羅宮)과 절벽에 붙어 길게 이어진 천교, 불교 고찰 운봉사(雲峰寺), 불.도교의 사제 12구의
등신불이 안치된 정궈사(正果寺) 등 가는 곳마다 얽힌 역사와 전설이 있는 곳으로 모두 절벽을 깍고 만들어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곳은 엘레베이터로 되어있고 능선길은 잘 만들어져 있여 계단과 산길이 많지만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가을날씨로 맑은 하늘과 뭉개구름이 어울어져 능선길을 갈때는 신선이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한국같으면 자연보호라는 이름아래 개발이 불가능하지만 중국은 이런 시설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절경을 보러
몰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역사의 오천년을 보려면 산시성을 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황하문명이 태동하고 춘추(春秋)시대의 12열국(列國)의 중 하나인 진(晋)이 있던 곳으로, 산시성(山西省)의 이름이
태항산맥의 서쪽에 있어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산시성은 과거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전란을 겪었습니다.
북방 유목 민족들이 대륙을 정벌하기 위해 남하하려면 만리장성 아래 산시성을 거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깎아지른 협곡과 평원 사이 오롯이 남은 고대 중국문명과 가옥들이 전통과 문화를 갖고 그대로 지켜오고 있는 것이
산시성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왕가대원입구입니다.
중국하면 왕씨성을 가진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간 왕씨 가족집단거주지는 왕이 사는 궁궐처럼 꾸며놓고 가족이 살았던 곳입니다.
중국면산 여행을 끝내고 오늘 오전은 중국의 왕가 가족 집단지를 여행합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통집들이 형식을 볼수있는 곳으로 중국역사를 한눈에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래는 왕씨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지만 피난내려와 왕씨로 성을 바꾸고
두부장사를 시작하여 돈을 벌어 나중에는 사업영역을 모피장사,비단장사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이곳에 자신들의 집단 거주지를 성으로 만들어 살았습니다.
가족들이 살던곳과 하인들이 사는곳을 생활구조방식에 따라 나눠져있는 주거문화를
볼수 있었습니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건축양식을 또한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중국도 황금연휴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나와 북적대기 시작합니다.
중국사람들과 어울어져 관광하려니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평요고성의 사진 몇장입니다.
중국 호떡을 먹어보았습니다.
우리처럼 설탕과 땅콩을 섞어만들었지만 바삭거리는 맛이 한국호떡보다 맛이 좋았습니다.
중국 평요고성에 가면 호떡을 꼭 먹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대추로 유명합니다.
커더란게 먹어보면 당도가 좋아 한국산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중국산 대추가 더 좋은 산시성 대추... 지금도 침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묵었던 여관입니다.
시설이 옛날 구조로 되어있어 난방이 제대로 되지않고 불편했습니다.
아내는 이곳에서 감기를 얻어왔습니다.
오후에 평요고성에 도착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평요고성... 옛날에는 중국의 4대도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성안에 왕이사는 궁이 있고 서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평요고성은 넓이가
엄청나 미로처럼 이리저리 길이 나있어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산시성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소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핑야오(平遙)고성입니다.
2500년전 성 하나가 고스란이 남아 있는 평요고성은 옛날 집들이 그대로 박물관처럼 남아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밖은 돌로되어있지만 안쪽에는 황토흙으로 얹혀져 있는 고성을 만날수있습니다.
여의도의 5배가 넘고 민가는 4000여채가 되어 인구가 50만명이 모여살고 있는 주거촌입니다.
침략이 많다보니 큰성을 쌓아놓고 이곳에 성속에서 안전하게 장사를 하며 살다보니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건축물에 옛모습그대로 장사를 하는 명물거리가 되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것 같습니다.
중앙에 시루가 있는데 이곳 2층에 올라가면 성 전체를 내려다 보는데 입장료를 받고 올려보냅니다.
옛날 모습의 여관처럼 생긴 숙소에서 하루밤을 자며 야간의 풍경도 관광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골목을 인파속에 한물결을 이루며 돌아다녔습니다.
우리나라 인사동 골목처럼 각종 골동품, 먹걸리,기념품등 남대문시장처럼 북적거리는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중국문화의 한단면을 볼수있는 시장골목은 거의 중국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한국돈은 통용이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저녁식사는 극장식 식당에서 공연을 보며 식사를 했습니다.
이곳지방의 전통문화와 음악을 소개하는 공연이었지만 모든걸 중국어로
하다보니 내용도 모르겠고 큰재미가 없었습니다.
이곳은 아직도 한국인들의 관광지 내왕을 모르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한국어에 관한 안내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호텔은 2층으로된 중국전통가옥을 호텔식으로 개조한 방으로 지금까지 중국
여행중 가장 시설이 좋지않았습니다.
저녁에 난방하는 방법을 몰라 추워서 떨고 잤습니다.
이런 호텔에 처음 묵다보니 창문이 닫혔는지 확인이 안되다보니 열고 잤고
에어콘이 난방까지 되는 것을 아침에서야 틀어보고 알았습니다.
미리 꼼꼼하게 알아보았으면 좋았으련만...
평요고성의 특징은 성안에 있는 집단마을의 모습, 중국의 전통생활과 습관을
어느정도 알수있는게 좋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간단한 기념품이나 간식거리를 사는정도이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다보니 수없이 종류의 상품과 먹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부부는 돌아다니며 대추와 중국호떡을 간식으로 사먹었습니다.
이들도 중국인이면 제값을 받는것 같지만 우리같이 말이 안통하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날은 산시성의 수도 태원시에서 하루밤을 지냈습니다.
현대적 시설로 다른 중국도시보다 도시계획이 잘되어 차도 옆에 자전거로 도로가 따로 되어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강남처럼 전봇대등 전기,통신시설도 지하로 매설되어 보이지 않고 아파트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산시성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장사에 능한 중국인들이 화페를 만들어 발전시킨 과정을 하나하나 읽어갈수 있게 전시되었고 현재와 옛날을
비교할수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