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처가 집자리와 구룡리큰동서네.
토요일 서산에 다녀왔다.
98세 되신 장모님이 서산시내 요양원에 계신데 몇개월동안 뵙지 못해 아내와 함께 간 것이다.
장모님은 정신도 또렷하시고 애들 소식도 물어보고 우리 부모님 소식도 궁금하신지 다 알아보신다.
지금 건강상태로는 100세는 무난하게 사실수있을 것 같다.
사시던 시골집이 얼마전에 모두 무너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시고 얼마되지 않아 지은집...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아내와 함께 돌아오는길에 잠깐 들렸다.
평평한 땅이 이곳이 집자리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기와장 하나 없이 사라졌다.
나도 아내와 결혼하며 수없이 왔던 처가...이제 추억속으로 잠들었다.
백년넘었다는 감나무도 얼마전에 넘어갔는데 그도 땅속에 묻혔버렸다.
사람이나 집이나 세월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처가를 나와 구룡리 큰동서네 집으로 향했다.
항상 고추를 이곳에서 사서 김장에 필요한 고추양념을 준비하곤 한다.
아내와 이십년 차이나는 큰동서는 오래전에 혼자가 되어 이곳에서 온갖 농사를 짓는다.
구십도로 허리는 꼬부라진 몸으로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옮기면서도 농사를 포기 하지 않는다.
5남매의 자식들은 큰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객지에서 살고있고 쌀이며 각종 농산물은 어머님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충당한다.
이제 농사를 그만지으라는 큰아들과 항상 충돌이 있다.
아내보다 한살 적은 큰아들은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당진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데 일요일 가끔 쉰다고 한다.
우리가 가서도 자식에게 챙겨주듯이 이것 저것 차에 싣고 가라고 하신다.
걸음이 너무 불편하신 큰동서를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말 내년부터는 농사가 불가능 할정도로 심각하다.
장모님과 큰동서를 보고 해가지는 노을을 맞으며 당진 구룡리를 떠났다.
몸이 불편한 큰딸과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의 상태가 거의 비슷하게 보였다.
노을빛과 같이 인생은 기울어진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날이 머지않아 다가 올 것이라는 우울함이 같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