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5일 오후...
12시간 넘는 비행 끝에 파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과는 8시간 늦습니다.
이제 시차적응이 1차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30년전에 왔을때의 기억이 조금 떠올랐지만 달라진 것은 긴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입국장으로 가는것이 새롭습니다.
날씨는 한국보다 더 따뜻해서 나뭇잎들이 많이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45명정도 되는 일행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가이드는 18년을 유럽가이드를 했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40대로 보이는 경험많은 가이드로 생각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48살먹은 노처녀였습니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호텔시설이 좋지않고 물을 사먹어야 하는 불편...화장실도 돈을 내고 가야하는
것이 가장 불편한 것 같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습니다.
중국여행을 6번 했는데 그때마다 묵었던 호텔은 넓고 호화스러운데 이곳의 호텔은 지방의 여인숙 수준이
아닌가 할정도로 초라합니다.
유럽의 호텔 자체가 대체적으로 이런 수준이라고 합니다.
난방도 조그만 라지에터가 전부라 추울 것 같습니다.
다행이 지금 날씨가 한국보다 따뜻해서 다행합니다.
4월25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식사는 당연히 빵과 우유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나와 친구들... 식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바케트빵과 부드러운 빵을 골라서 가져왔습니다.
밀가루가 이곳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들이라 신선한 느낌이 들고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푸짐하게 빵으로 식사를 한셈입니다.
관광은 날씨가 많은 영향을 주는데 오늘 날씨는 너무 화창합니다.
구름한점없는 맑은 날씨가 요즘 계속된다고 합니다.
호텔에서 파리시내로 가는 도로....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이면 가는길을 한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파리는 도로를 확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시전체가 유적지이기 때문에 도로는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을 정부는 한답니다.
차를 주차하기위한 시설이 없기 때문에 시내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자전거나
지하철로 시내를 들어간다고 합니다.
시내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주차대가 골목마다 있는걸 발견했습니다.
개선문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가이드는 집시들을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순간순간 그들이 가방과 지갑, 특히 스마트폰을 노린다고 합니다.
지하통로를 통해 개선문으로 가보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개선문입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섬나라에서 태어나 군사학교를 졸업후 군인이 되어
전쟁영웅이 되고 유럽을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혁명영웅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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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 Napoléon Bonaparte ]
프랑스의 군인이자 제 1통령이며 황제를 지낸 인물
출생 - 사망 1769 ~ 1821
1769년 8월 15일 지중해 서쪽 코르시카 섬에서 출생. 1779년 프랑스로 건너간 아버지들 따라가 브리엔 군인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 나폴레옹은 수학과 역사에 특히 뛰어났다.
1785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장교로 활약하던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에 가담한다. 자코뱅파를
지지했던 나폴레옹은 로베스 피에르가 사형당하면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외국 군대가 국경을 침범하면서 군인이 필요하게 되어 나폴레옹은 사면되고, 1796년에는 이탈리아 방면에서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는
부대 사령관이 되어 4만 5천여 명의 군대를 지휘했다. 조제핀 드 보네와 결혼한 것도 27살이 되던 이 해다. 나폴레옹은 북이탈리아에서
벌어진 1년 여 간의 전투 끝에 오스트리아 군을 제압했다. 그리고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맺어 치찰피나 공화국을 창설함으로써
프랑스 국경 밖에서 프랑스의 영토를 확보했다.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경계심을 느낀 프랑스 혁명정부는 나폴레옹에게 이집트 원정을 종용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와 벌어진 피라미드의 전투에서도 승리한다.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나폴레옹은 180여 명의 학자들을
이집트에 대동,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을 조사하게 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를 새긴 로제타석을 발견한 것도 이때다.
육지전에서 프랑스군이 승승장구 한 반면에 해전에서는 영국의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절대우세를 갖고 있었다.
영국이 대 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에 맞서는 동안 프랑스는 계속해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중에 프랑스로 돌아가 쿠테타를 감행, 정권 장악을 장악하여 통령정부를 세웠다.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정복하고, 1802년 3월에는 영국과 아미앵조약을 체결하여 영국과 강화했다.
내정 안정을 위해서 2281조항에 이르는 <나폴레옹 법전>을 제정하였다.
법전을 통해 그는 혁명으로 차지하게 된 국민의 권리를 지키려 하였다.
이 법률은 문장의 측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804년 7월에는 국민 투표로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그 해 12월에는 대관식을 갖고, 머리에 관을 씌워주려는 교황 대신 나폴레옹 스스로 관을 썼다. 스스로의 힘으로 황제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후 영국이 아미앵조약을 깨자 나폴레옹은 영국본토상륙작전을 계획하였고,
이에 맞서 1805년 제3차 대 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먼저 나폴레옹 군은 오스트리아 군의 진공을 맞아 울름회전에서 이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당시 해상의 주도권은 쥐고 있던 영국은 1805년 넬슨 제독을 앞세워 트라팔가 바다에서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였고
이로써, 프랑스의 영국상륙작전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1806년 독일전선에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ㆍ러시아 동맹군을 격파하고 이들 국가와 라인동맹을 결성하여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어 대륙봉쇄령을 발표, 대륙 여러 나라에 대해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하도록 했다.
1810년 1월 10일, 나폴레옹은 아내 조제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와 결혼한다. 날이 갈수록 혁명정신을 잃어가던
나폴레옹은 1812년에 떠난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큰 위기에 직면한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주축이 된 국민해방군에게 파리를 점령당하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이후 전후 처리를 위해 빈 회의가 열렸지만, 회의가 지지부진한 사이에 나폴레옹은 엘가섬을 탈출하여 또다시 연합군과 전쟁을 벌였다.
최후의 결전이었던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아프리카 서쪽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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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도 황제가 된후 오랫동안 집권을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그가 프랑에 남긴 업적은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파리시내 유적지를 만들도록 도시계획을 한 장본인이 나폴레옹이기
때문입니다.
개선문에서 상드리제거리로 잠깐 돌아 다녔습니다.
상드리제에서 콩고드광장까지 거리가 2킬로 정도입니다.
걸어갈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 잠깐 산책으로 때웠습니다.
노틀담성당은 세느강을 끼고 있는 건물로 지금도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틀담의 곱추라는 영화로도 유명한 곳이 되어 있는 이곳은
규모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대관식도 이곳에 열렸다고 합니다.
그곳에 사진을 찍는 시간을 주어 주위를 돌고있는데 갑자기 미국인
부부가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소매치기가 아닌가하고 놀랐으나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니 DSC-H9 디카를 보고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 똑같은 모델의 카메라이다보니 신기하다고 다가온
것입니다.
더욱더 재미있는 것은 셔터스위치 커버가 떨어져나간 것까지 똑같다는
것입니다.
서로 재미있다고 한참을 카메라를 보고 비교하며 악수하고 웃었습니다.
뭔가 같은 동질성이 이국인 서로를 관심있게 만들은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파리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베르사이유궁전으로 향했습니다.
루이14세가 세운 궁전입니다.
본래는 왕실의 사냥터였다고 하는데 루이14세는 파리를 떠나고 싶었답니다.
어려서 왕권을 잠시 잃었던 경험이 있어 파리에 있는 궁전을 떠나 새로운
궁전을 짓고 살고 싶어 사냥터였던 이곳에 새로운 궁전을 세워 이곳에서
120년간 통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대로 잘 보존된 궁궐의 내부를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경북궁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하듯이 우리들도 잘 보존된 프랑스
궁궐을 볼수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입니다.
왕정제도가 사라진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파리여행의 말미를 장식하는 루브르박물관 관람을 위해 다시 개선문
근처을 찾았습니다.
어제 보았던 개선문과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물을 한번보았을때의 신선함이 두 번보게되면 사라집니다.
나폴레옹이 무질서했던 파리시내를 개선문을 만들면서 도시계획을 세워
지금의 파리를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시기는 이십년도 안된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해낸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백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대로를 보존하여 후손들은 해외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먹고살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세계3대박물관에 속하는 루브르 박물관... 역시 단체관광객들과 개인관광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수많은 인종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곳 박물관에는 한국인 안내인이 있어 단체관광객들은 그의 안내에 따라
두그룹으로 나눠졌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루브르 박물관 안내원... 그의 뒤를 따라 각종 조각품
보물들이 전시된 각방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곳 박물관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은 모나리자의 미소 명화와 비너스상입니다.
역시 그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역대 왕들의 대형초상화와 유명화가들이 그린 카톨릭 성화등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왕족들은 화가들을 고용하여 각종 그림을 그리게 하고 후원을 해주었다고합니다.
돈많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의 합작으로 아름다운 명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절대권력이 가능하게 만든 예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궁궐들도 절대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에펠탑...
모두 철강을 이용하여 리벹으로 연결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 올라가면 파리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파리는 평야지대에 있는 도시라 이런 몇백미터의 높이에서도 전체 파리시내가 내려다보입니다.
파리 세느강 야경도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였습니다.
이틀간의 프랑스 여행을 끝내고 스위스 용프라우 3454미터의 등정을 위해
파리에서 열차를 탓습니다.
저녁은 한국식당에서 준비한 한식도시락으로 준비했습니다.
유채꽃과 밀밭으로 되어진 프랑스 전원풍경을 감상하며 4시간의 기차여행을
즐겼습니다.
도시락을 6시경에 열차에서 먹고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근처의 역에서 버스로
갈아탓습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뿌리는 날씨... 산악지대라 날씨변화가 심한 것 같습니다.
일행 46명의 대인원이 이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인솔가이드의 지시를 그런대로 잘 따르는 일행들 덕분의 조금의 지체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여 주위 경관은 잘 볼수 없었지만 스위스로 향하는
길은 산악지대입니다.
스위스는 개인소득 6만불 가까이 되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유일하게 EU(유럽연합국가)에 가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EU에 가입하다보면 노동시장이 깨어져 자국민들이 피해가 올 것 같아
가입을 안하고 있는데 근접국가들의 압력이 거세다고 합니다.
두 번이나 국민투표를 했지만 결국은 부결되어 아직 가입을 하지않아
유로가 제대로 통용이 안됩니다.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한 것이 세상사입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숙소는 한국인이 경영을 하는지 주위 안내문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고
특히 인터넷 시설이 잘 되어있습니다.
항상 호텔에 들어가면 인터넷부터 살려봅니다.
이숙소에 들어오자마자 확인을 해보니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인터넷도 빠른걸
확인했습니다.
바로 딸녀석과 보이스톡이 되어 통화를 하고 사진을 몇장 발송했습니다.
그동안 못올렸던 사진도 블로그에 올리면서 오랜만에 인터넷을 사동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고 내일은 새벽에 출발하여 아쉬웠습니다.
용프라우를 관광하기위해 산악열차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에 올라오면서 조금씩 오던 이슬비가 제법 우산을 쓸정도로 내리기ㅣ
시작합니다.
이곳 산악지대의 날씨는 일년의 70프로정도가 구름이 낀 흐린 날씨라고
합니다.
산악열차가 어느정도 해발 천미터를 넘어가면서 자연경관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갤런더에서 나오는 사진 풍경이 나옵니다.
열차 창가주변을 보던 관광객들이 카메라 샤터를 누르기 시작하고
감탄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지어진 전원주택들...
대부분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숙박용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만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주택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목축업을 합니다.
산악열차를 3번정도 갈아 탓습니다.
알프스 용프라 산속을 터널로 정상까지 17킬로나 뚫었다고 합니다.
공사기간도 12년간 하여 용프라우 3454미터까지 열차로 편히
올라갑니다.
중간에 쉼터겸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의 높이는 이미 해발 3천미터를
넘다보니 산소가 부족하여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럽다고 하고 더러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을 포기할까 까지 하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부부도 처음으로 3천미터가 넘는 높은 곳에 올라가니 조금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상에는 여러 가지 시설을 해놓았습니다.
얼음조각을 전시해놓은 얼음터널을 돌아보며 감상했습니다.
건물밖으로 나오니 눈세상입니다.
살을 베어내는듯한 추위와 강한 바람... 10분이면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강추위가 느껴졌습니다.
간단한 인증샷을 하고 5분이상은 머물지 못하고 사람들은 건물속으로 들어옵니다.
내려오며 얼음궁전을 관람했습니다.
얼음터널속에 조각해놓은 각종 얼음조각 예술품들을 감상했습니다.
눈보라로 주위경관은 보지 못하고 그냥 건물속으로 들어와 컵라면을
사먹었습니다.
농심 신라면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34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생활하는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게
하는 여행입니다.
자연경관으로 세계사람들이 수없이 찾아오는 스위스...
스키장도 많았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6만불이 넘는다고 하는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곳곳에 선전하고 있는 시계와 휴대용 칼등이 정밀산업이 잘 발전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산악열차로 하산하면서 주위에 있는 풍경들... 하나하나 모두 달력의 사진들
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알프스 용프라우 산악열차 출발하였던 인터라켄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늦게
했습니다.
스위스식으로 하는 식사... 맛있게 먹었습니다.
도시락으로 산악열차에서 식사하고 먹는 제대로 된 식사이기 때문에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오후에는 이제 스위스를 떠나 이태리로 떠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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