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여행...
중학교 동창 고향지역 친구들 20명이 다녀온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은 정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끝이났다.
또 어느때 갈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60대 중반이 되어 같이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5년전 제주도 2박3일 여행이후 4박6일 해외여행은 몇 년을 준비해서 다 같이 가기로 했지만 몇몇친구 4명이 결국은 불참하고 말았다.
불참한 친구들 특별한 개인사정이 갑자기 생겨서 못간 것이지만 못내 아쉽기만 하다.
4박6일동안 한배를 타고 떠난 가족여행이라 생각된다.
비행기에서 타국에서 바다에서 유적지에서 우리는 한팀이 되어 움직이고 또 걷고 걸었다.
4박6일 짧은 기간이지만 생각건대 한달을 여행한 것처럼 길고 긴 추억을 남기고 마치었다.
중학교 동창들...
참으로 오랜기간 같이 동행을 한 친구들이다.
1965년 입학을 기준으로 하니 3월이 50년이 지났다.
입학 50주년 기념 추억여행이 된 셈이다.
까까머리 단발머리 어린학생들이 이제는 반백이 되고 다 빠진 머리 대머리가 되어 노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행을 떠난 것이다.
베트남 가이드는 몇십년 가이드 생활하면서 남녀 초등학교 동창들이 같이 오는 여행은 보았지만 중학교 동창 남녀들이 대규모로 이렇게 여행오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직장에서도 이제 은퇴하고 가정에서도 애들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살때가 60대 중반의 나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도 벗어나고 애들을 키우는 가사노동에서도 해방되는 나이가 바로 60대 중반이라 아니겠는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 생각된다.
직장생활 충실히 하느라 자식들 키우느라 자신을 되돌아 볼시간 없이 정신없이 살았던 지난날들... 이제는 친구들과 이렇게 여유있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같이 동행을 못한 4명의 친구들이 여행내내 생각나고 동행 못한 아쉬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나라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서산앞바다 대산 황금산이 보였다.
석유화학단지 끝자락에 황금산이 보이고 서해안의 바다도 내려다보며 날씨가 좋아 몇천미터 상공에서 고향바다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함께했다.
5시간의 비행 끝에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떠날때는 날씨가 좋았는데 흐리고 습한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
3월의 베트남 날씨가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안개 이슬비를 맞으며 호찌민 묘가 있는 공원에 도착 첫 관광을 시작했다.
베트남 통일의 영웅 호찌민...
한국의 김구선생과 비슷한 애국자로 칭호받는다.
한국의 김구는 미완성의 영웅이지만 호찌민은 미국을 이긴 통일영웅으로 칭호를 받는다.
평생 결혼도 안하고 오직 베트남의 통일을 위해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호지민은 가족이 전혀없이 지냈는데 미국과 전쟁시절 누이가 한번 찾아왔는데 잠깐 십분동안 만나고 헤어질정도로 오직 국가를 위해 모든걸 던진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노이 관광을 마치고 하롱베이로 이동을 했다.
4시간정도 이동을 하는 버스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유명한 관광지인 하롱베이에 고속도로가 없다.
좁은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 가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제한속도가 있어 빨리 달릴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강력한 벌금제도 때문이란다.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벌금에 운행정지를 피하기위해서는 천천히 갈수밖에 없다.
도로위를 달리는 오토바이는 차량통행에 많은 방해를 주는게 또한가지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베트남 하롱베이 호텔에서 첫밤을 맞이했다.
미리 정해진 룸메이트명단에 따라 나는 기중이와 한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기중이의 코고는 소리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많이 좋아졌다는 그의 말을 믿기로 하고 즐거운 여행의 첫밤을 시작했다.
조금 코고는 소리가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나도 심하지는 않지만 코를 골았을 것이다.
첫날 저녁식사후 전체모임이 용섭이 방에서 있었다.
가져간 소주와 안주, 음료, 간단한 과일로 첫날밤 호텔파티는 시작되었다.
우리팀 20명이 모두 모여 즐거운 여행의 만담과 웃음꽃이 피었다.
특히 금식이의 국악 민요 노래소리에 취해 즐거음은 우리들의 마음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금식이는 대전에 살면서 민요동아리에 참여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로 이번여행에 몇 명이 같이 동행해주었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하며 베트남의 첫날을 하롱베이에서 보냈다.
아침이 밝았다.
우선 창밖을 보니 어제에 비해 날씨가 좋다.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안개도 없어지고 여행하기에는 적당한 것 같다.
오늘은 하롱베이에서 하루종일 보내게 된다.
선상에서 하롱베이 주변을 관광하면서 점심식사도 하고 노래방이 시설되어 있어 노래도 하면서 하루종일 배위에서 지낸며 지내는 관광이다.
우리 동창팀들만 한배를 타고 즐기는 선상관광인 것이다.
우리같은 동창들이 관광을 온 팀들에게는 딱 맞는 상품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배위에 탄 베트남 젊은 여인...사진사 여자로 카메라로 하롱베이의 풍경을 담은 개인사진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끝난후에 한 장당 1달러를 받은다고 한다.
그럭저럭 나도 찍었는데 나중에 30달러를 주고 30장의 사진을 샀는데 분명 가이드와 동업을 하는 것 같았다.
유람선 노래방이 시작되고 친구들과 흥에 겨워 노래도 부르며 술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하루가 금방간다.
일을 할때는 하루가 길어지는데 이렇게 놀고 먹고 마시는데는 시간이 총알처럼 달려간다.
인생별거있어?
이렇게 먹고 마시며 즐기며 사는거지...
놀때는 이렇게 신나게 놀고 열심히 사는게 인생이란말여~
정말 그런것 같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며 살필요가 있는가?
그저 주어진 그 그시간을 가장 잘 즐겁게 살면 최고의 인생일 것이다.
금식이와 대전에서 동행한 정희 친구는 우리 팀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어 분위기를 만드는 최고의 가치가 되어있었다.
놀고먹고 즐기는 선상관광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베트남의 음식들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거부감이 특별히 없다.
특히 쌀국수의 맛은 씹는 느낌이 부드러워 밀가루 음식에서 나타나는 소화불량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쌀이 워낙 많이 나는 국가다 보니 쌀국수가 개발되어 밀가루국수가 없는가 보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때마다 쌀국수를 즐겨 먹었다.
베트남 관광을 안내을 한 우리 가이드는 50대초반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처음에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있다가 한국의 IMF위기때 가이드로 전환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같은 나이먹은 사람들을 가이드하기에는 적당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쇼핑을 몇군데 다니면서 나름대로 장사꾼 기질을 발휘를 하며 지갑을 열도록 하는 말은 중간중간 하며 다녔다.
캄보디아 가이드처럼 강매하는 느낌은 없었다.
이틀을 하노이와 하롱베이에서 보내고 캄보디아로 가기위해 하노이 공항으로 이동했다.
동행 가이드가 없어 우리끼리 소속을 밟고 베트남 항공편으로 캄보디아 시엠립공항에 도착헤 입국수속을 시작했다.
캄보디아 세관을 지날 때 1달씩 주면 잘 통과될거라는 얘기는 미리 베트남에서 들어온지라 1달러지페를 지갑에 준비하며 공항에 내렸다.
세관신고서 입국신고서를 비행기에서 쓰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두 흥미진진하였지만 실제로 입국하면서 코메디같은 입국신고를 하며 캄보디아에 입국했다.
우리나라 지방공항보다도 못한 시엠립공항... 캄보디아 비행기는 한 대도 보이지않고 외국의 작은 비행기들만 들락거린다.
입국하며 줄을 서있는데 종이한장을 나눠주며 일불씩 받는다.
물론 비자비용은 따로 내면서 공무원들이 팁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잘 진행되겠구나 했지만 일불은 비자신청서를 낼때, 세관신고를 할때 계속 내야 통과가 되는 뇌물 공항의 모습을 보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특히 한국사람들이 타켙이 되어 일불씩 창구마다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중에 한사람은 일불을 준다는 것이 당황해서 십불짜리를 준 친구도 있었다.
일단은 캄보디아에 입국했다는 것, 말이 통하지 않아도 돈이면 모든게 해결되는 공항을 경험을 했다는 것이 신기해 나와서는 모두 웃고 난리였다.
날씨는 베트남과는 달리 너무 좋아 맑은 하늘의 해가 따갑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초여름의 날씨로 아침을 제외하곤 오후에는 밖에서 활동을 못할정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내일은 아침일찍 나와 앙코르유적을 보는 것이 좋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우리들은 오전중에 앙코르와트 유적을 오토바이택시로 이동하며 빨리 보고 오후에는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시엠립 시내는 우리나라 60년대의 도로이고 주변의 상가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기사정도 좋지않아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삼십대 후반의 나이로 젊은 친구였다.
아직 결혼을 하지않았지만 이곳에서 가이드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결혼중매부터 가게를 사서 한국관광객상대로 상품도 팔고 자신의 말로는 농토도 대규모로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현지인을 대리인으로 하면 땅은 얼마든지 살수있다고 한다.
일년전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과 할머니를 초청해서 같이 살고 있는데 한국보다 이곳이 살기좋다고 한다.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옛날에 살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캄보디아 모습을 보니 낯설지않다는 것이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가 되어 고개가 끄떡여진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힘든때 옛날 먹고살기 어려웠지만 정이 많았던 풍경이 이곳에서 펼쳐지니 다시 어렸을때로 돌아온 느낌이 들것이다.
캄보디아 한국인 가이드는 한마디로 젊고 패기는 있는데 젊은 사람을 돈을 너무 쫒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쇼핑에서 쇼핑를 강요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한국에서는 한두개에 만원하는 망고가 이곳은 한자루가 만원정도로 싸고 맛이 있었다.
캄보디아 시엠립 호텔은 지낼만했다.
유럽여행때 격었던 좁은 호텔에 비하면 최상의 호텔로 생각될정도로 에어콘도 잘되고 화장실로 넓었으며 침대도 폭신했다.
싸고 싼 망고를 한보따리 사서 소주와 함께 과일을 먹으며 캄보디아 여행의 첫밤을 친구들과 보냈다.
캄보디아 호텔에서도 우리 친구들 20여명은 한방에 모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먹고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일을 먹으며 재미있게 저녁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7시...
시엠립 앙코르 사원 관광을 시작했다.
오토바이 택시에 2명씩 짝을 만들어 타고 앙코르사원으로 향했다.
도로는 비포장이지만 그런대로 편편하게 정리하고 먼지도 별로 나지 않아 달릴만 하고 날씨도 좋아 창문없는 오토바이택시안은 시원하다.
물이 고인 호수가 보이고 앙코르사원의 웅장한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앙코르 사원은 1000년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축조했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으며 전쟁포화와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잘 견디며 그 형체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크메르왕조때 건립된 앙코르와트는 그 규모나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임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이 많은 돌들이 어떻게 옮겨왔고 누가 이런 예술품의 조각을 했는지 입이 다물어 지지않는다. 더구나 이런 후진국에서 찬란한 문명이 생겼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크메르 왕조 이후의 왕조인 푸난왕조와 첸라왕조시대에 그 왕조들의 권세와 존엄을 알리고 지상의 신으로 대접받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축조되었다는게 씁쓸했다.
한때는 동남아 전역을 점령했던 크메르제국의 역사를 알수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축조에 투입되었던 엄청난 노예들 그리고 힘없는 백성들이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겨왔는지 지금도 알수없다고 한다.
유럽에 가면 이런 유물들이 많이 있지만 동남아의 국가에서 이런 돌로 된 유물들이 많다는 것이 신기로울뿐이다.
그 정교한 돌에 조각한 작품들은 수작업에 의존하여 돌을 깎고 쌓으면서 겪어야만 했을 그 고통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실로 엄청난 일이다.
12세기 초에 건립된 앙코르와트는 69만 5천평이라는 광할한 면적에 세워진 인류 최대 사원이다
섬세한 조각들과 정교한 건축기법은 현대인들도 재현하기 힘든 건축공학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으며 가이드의 말로의하면 큰돌에 하나하나 새겨가며 밑으로 내려왔다는 것이지만 정말로 최고의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들이었다.
가는곳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건축물이 우리를 반긴다.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유적을 일본사람들이 복원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관리를 해주며 입장료의 20프로를 가져간다고 하니 장사속이 대단한 일본사람들이다.
앙코르사원의 주관리는 베트남정부에서 하고 있다고 전하기도한다.
최근들어서는 일본인들이 외국인이 땅을 사지 못하니 이쪽사람과 결혼해서 부인이름 자식이름으로 땅을 많이 사들인다는 이야기다.
차도 거의 구십프로 이상 일본차들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지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베트남은 다행히도 현대차가 조금 보이긴 보였다.
캄보디아는 전자제품 삼성,LG등의 가게들이 보이는 것을 제외하곤 거의 일본제 일색이다.
앙코르유적이 일본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 맘이 상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천하의 유산을 그런대로 보존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했다.
앙코르 유적관광을 마치고 이제 톤레삽 수상마을 관광을 떠났다.
바다같이 넓은 큰호수 에서 물위에 뜬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구경하는 것이다.
우선은 큰배를 타고 톤레삽호수로 나가면 이곳에서 작은배에 두명씩 타고 관광을 한다.
호수 수상마을 한바퀴 돌면서 그들의 생활을 엿보았다.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낙네,아이들이 보이고 남자들끼리 식탁에 앉아 술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사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바없지만 너무 열악한 생활환경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곳을 보고 나온 내 느낌은 우리나라는 너무 잘살고 흥청망청 쓰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음식을 먹어도 남기는게 많은 우리나라 음식문화도 개선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캄보디아관광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나라가 너무 질서가 없고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캄캄한 후진국이라는 생각이다.
우리와는 몇십년 뒤떨어진 후진국에서 희망이라는 글자를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어보였다.
관리부터 부정부패로 만연되어있어 더욱 멀게만 느껴진 개발도상국의 첫걸음이 과연 잘될까하는 느낌이다.
킬링필드라는 내전으로 수백만명이 학살된 현장은 지금도 땅만파면 사람뼈가 나온다는 것이다.
나라의 역사는 정치인들이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똑똑하고 정직해야만 국민들이 잘살수 있다는 진실을 바로 캄보디아역사에서 알게된다.
친구들과 떠났던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
그런대로 많은 것을 느꼈던 여행으로 기억되어진다.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마음적으로 편안했었고 특히 중학교 입학 50주년기념여행이라는 타이틀이 맘에 들었다.
1965년도 3월에 입학했으니 꼭 50년이 흘른후 같이 동행한 여행이다.
2015년 3월에 여행을 마치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본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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