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바라바시에서 네팔로 향했다.
버스로 12시간 걸리는 길고 긴 버스여행이다.
주위풍경이 좋다면 모르지만 길이 좁고 덜컹거리는 길을 가려면 힘든여정이다.
네팔 품비니로 향하여 그곳에서 하룻밤자고 포카라로 향한다.
주위의 인도 중소도시등을 보면서 가는데 여전히 시장주위는 소와 함께 냄새나는 도시로 지저분한 도시의 연속이다.
먼지도 많고 공해도 많은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것이 이상할정도...
일단은 국경근처에 오니 트럭이 5킬로나 줄지어 서있다.
대부분 인도의 생필품을 싣고가는 트럭들이다.
이들도 국경을 넘기위해 허가를 기다리고 있단다.
인도와 네팔은 무비자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인도사람이 언제든지 네팔로 와사 살수도 있단다.
두나라가 한국가처럼 서로 잘 운영하고 지내는 것 같다.
저녁때가 되어 국경 룸비니 지역에 도착하여 비자를 받았다.
비자를 받기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별로없어 한시간여 기다려 비자를 받았다.
룸비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룸비니의 유적은 부처님 탄생지 보는 것...
제팔 남부 데라이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탄생지로 불교 4대성지 중 하나라고 한다.
페허로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으나 1895년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마야사장은 부처의 생모인 마야부인 상을 모시는 신사로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형상이 있는데 이는 부처의 출생을 의하는 것
으로 출산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이형상을 어루만지면 아이를 가질수 잇는 속설도 있다.
아쇽필러 인도 황체 아쇼카가 부처의 출생을 기념하여 세운 석주, 커다란 돌기둥에 쓴 비문이 문자로 써있는데 내용을 모른다.
구룡못도 있는데 마야부인이 부처를 낳기 바로 직전 목욕을 하고 석가모니를 낳고나서 처음으로 세례를 하여 씻긴 곳이다.
룸비니에서 하룻밤을 자고 포카라로 향했다.
이곳 길은 인도길보다는 먼지가 덜나고 소음도 거의 없이 갈 수 있어 버스여행이 편해졌다.
포카라로 향하면서 점점 히말라야 영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산속으로 가면서 풍경은 점점 좋아졌다.
포카라에서 호텔로 들어갔는데 이호텔은 일본인이 지은 호텔로 오래된 느낌이 왔다.
옛날식 욕조에 넓은 방, 베란다에서 바로 히말라야 영봉들을 볼수있게 지어져있다.
이른새벽 히말라야 일출을 가장 잘 조망할수있는 포크라 동쪽에 위치한 사랑코트 전망대에 가서 일출을 보는 것이다.
어느마을의 골목길로 가는듯 하더만 계속 골목길을 올라갔다.
차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골목길은 해발 천미터가 조금 넘는 동네로 들어섰다.
어느 집앞에 멈춰 그집 옥상으로 가는데 일불씩 받는다.
차한잔을 주면서 히말라야 일출을 보라는 것인데 이백여명은 될 것 같다.
하루 한번 일출을 보는 댓가로 일불의 입장료를 받는 셈인데 그 수입이 대단할 것 같다.
안나푸르나,히말라야의 영봉들이 뚜렷하게 보이는것은 확실하다.
아침일찍 올라온 보람이 있는지 바로 코앞에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출을 보면서 점점 밝아오는 히말라야 일출 관광이야말로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신처럼 보이는 히말라야 영봉들...
그 신들에게 난 속으로 기도와 기원을 했다.
우리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했다.
특히 새로 가정을 꾸린 아들부부의 행복한 생활, 딸네 가족 외손자들의 건강도 함께 기원하며 내 주변의 형제가족들도 모두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머님의 건강도 함께 기원하며 히말라야 일출여행을 마쳤다.
이곳에서 내려와 포카라 페와호수,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네명씩 타고 히말라야 영봉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포카라 히말라야 영봉 관광은 끝이 났다.
포카라를 떠나 카투만두로 향했다.
길사정은 인도와는 좋은 편이지만 산악지대의 길들이라 좁고 험악하다.
운전기사는 인도의 기사와는 다르게 크락숀도 많이 안울리고 운전도 조용히 하는 편으로 보여 약간 안심이 되었다.
포카라에서 가트만두까지는 200km남짓 떨어졌지만 8시간정도 예상이 되었는데 실제로도 그 이상이 걸렸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해발 1281미터의 자리잡고 있다.
13세기초 처음 왕국의 수도로 정해진 이래 줄곧 정치,경제,행정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도시이다.
인구는 대략 오백만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이다. 전 세계 히피들의 천국이라 불리우기도 했던 이 도시에는 중세
카트만두 분지의 도시들과 힌두,불교의 성지들, 히말라야를 향한 산악인들, 여행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매력과 활기가 넘치는 도시이다.
왕궁이 더르바르 광장에 가보았다.
더르바르는 궁정이라는 뜻을 지닌 네팔어다. 3개의 멀러 왕조가 분지에 독립,군림했던 3왕국 시대에는 왕궁 앞의 광장으로서
카트만두 왕국의 중심부였다. 광장 안에는 하누만 도카, 딸레주사원, 쉬바 파르바티 사원, 마주데발및 네팔 왕국의 살아있는
여신을 모시고 있는 꾸마리 사원이있다.
지난번 지진으로 무너진 흔적들이 있어 아직도 복원하고 있었고 지금은 갈라진 벽이 워험한 건물로 여겨져 받침기둥을 세워놓았다.
이곳에서 중학교 동창 춘동이를 호텔로비에서 아침에 만났다.
이곳에 올때부터 만나기로 이미 예정이 되어있어 만나기전 통화를 몇 번했다.
가이드와도 통화를 해서 위치를 정확히 알고 아침에 로비에서 만난 것이다.
친구는 한국에서 투자한 기술연구소 비슷한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벌써 2년6개월을 이곳에서 보낸 그는 부인과 함께 서울집을 전세놓고 살아간댄다.
이곳 물가가 싸서 생활비는 많이 안들어간댄다.
예를 들어 머리깍는 비용이 천원정도면 되고 시장에 가도 생활필수품이 한국과 몇배싸기 때문에 한달에 80만원정도의 생활비로 살아간다고한다.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어 서울집은 필요없기도 했다.
한명이 장가 안간 아들이 있는데 독일에 살고 있단다.
그 아들에게는 독일에 정착해서 외국여자랑 살던지 하라고 이야기 해놓았단다.
한시간이상을 로비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네팔인이 다되어가는 모습을 읽었고 그는 이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들어 이런 후진국에서 스트레스 안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일이 대단하다.
이곳 관공서나 회사 근무시간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끝난다고 한다.
후진국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하는데 오히려 근무시간이 점심시간빼면 5시간뿐이 안되는셈이다.
이 복잡한 500만 도시에 지하철 하나 없다니 말이 안된다.
친구와 헤어져 우리 팀은 다시 카트만두 관광에 나섰다.
원숭이 공원에 가보았다.
스와암부나트라고 하는 카트만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탑중의 하나로 다른이름으로 몽키템플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중심가에서 4킬로정 떨어져 있는 언덕에 있는 스투파이다.
언덕에 가까워지면 길양쪽에 티베트인들의 집들이 많이 보이고 원숭이들이 길주위에서 돌아다니며 놀고있다.
정상에 오르면 부처의 눈을 묘사하는 스투파(탑)를 중심으로 작은 탑들과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수많은 원숭이들이 탑주위를 돌
아다니며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싸우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심지어 성행위까지 한다.
카트만두공항에서 다시 인도 델리 공항으로 왔다.
마지막 일정이 인도델리시내관광이 잡혀있다.
다시 오고싶지않은 인도를 다시 들어온 것이다.
입국해서 들어오는데 입국장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미 열흘전에 입국비자를 받아 들어왔는데 종이비자를 내놓으라는 직원줄에선 우리팀 사람은 애를 먹었다.
매연이 많은 델리공항에 들어와 다시 가이드를 만났는데 전에 만났던 젊은 친구가 아니라 나보다 두 살적은 노인데 가이드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인도이야기를 한다.
이나라는 힌두교를 믿고 수많은 신들을 모셔서 발전을 못한다고 하면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며 한시간 넘게 호텔까지 달려왔다.
호텔은 5성급 호텔로 호화스럽다고 표현할 정도로 시설이 좋은 호텔이다.
한가지 단점은 와이파이가 유료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니며 와이파이하면서 돈을 받는 호텔은 이호텔이 유일하다.
난 식당에서도 와이파이를 하면서 다녔는데 돈을 내라고 하니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 델리공항을 관광하고 저녁먹고 공항에 가서 내일 새벽 1시 인천공항 출발할 것이다.
인천까지 7시간정도 걸리니 오전 12시경에 도착할지 모른다.
호텔로 아침식사를 하러 나갔다.
넓은 로비에는 분수대가 있고 그 주위로 낮에 하루종일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빵종류, 인도요리등 수많은 요리가 있고 과일의 종류도 여러 가지 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아침식사중 최상의 요리를 즐기며 먹은 것 같지만 인도요리는 먹지않고 빵과 요구르트 과일등으로 배를 채웠다.
오늘 인도델리의 하늘은 구름이 많이 끼여있다.
아마도 시내로 나가면 차들이 많이 막힐 것이다.
몇군데 들려 관광을 하고 이제 저녁먹고 공항으로 가면 관광은 끝이다.
인도에서 설사를 한 것이 가장 큰 이번여행의 단점이었고 고통의 시간이다.
두고두고 이 사건은 잊지못할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한번 깨닫았고 어디를 가나 자기 소화력을 과대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난 내 소화력에 대해서 너무 과대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딴 사람은 걸려도 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중대한 병이 찾아온 것이다.
이번 여행팀은 19명으로 부부동반이 5쌍정도 되고 중년여성 혼자온 사람들이 6명, 중년남자 혼자온 사람이 3명이었다.
이번여행의 특징은 남자들이 혼자 온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부분 여자들이 단체로 오거나 여성의 비율이 높았는데 이번팀은 부부동반이 많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서울에서 온 부부는 남편이 74세 부인은 70세 정도로 생각이 되는데 병하처럼 불교 포교사로 생활하는 분이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과일을 사서 우리팀들에게 나눠주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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