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
제가 이 수목원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이곳을 만든 민병갈 박사의 생애와 그의 삶의 발자취였습니다.
세상을 뜨신지 11년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때...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라. 묘 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고 했다 하십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수목원이 지난 2012년 고인의 유골을 수습하고 화장하여 서거 10년만에 수목장이 치루었다고 합니다.
현 묘터는 설립자가 10년간 잠든 곳이라는 작은 표지석이 설치되었으며, 향후 민병갈 추모정원(Carl Ferris Miller Memorial Garden)으로 조성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고 민병갈 박사는 1945년 미 해군 장교로 한국에 와 57년간 한국인으로 살면서 태안 천리포일대의 민둥산을 자신의
사재를 털어 나무를 사다가 하나하나 심었다고 합니다.
개인의 재산을 출연하여 세계가 인증하는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사람으로 평생 나무사랑을 실천한 이 땅을 살다간 엘자아르 부피에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때 고 민병갈 박사의 남다른 나무사랑과 자연애호를 금탑산업훈장으로 보답했고,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그의 공적을 새긴 동판초상을 헌정했습니다.
설립자 민병갈...
미국이름은 (CARL Ferris Miller) - 미국이름을 한국식으로 풀면 민병갈입니다.
한국사랑의 숭고함과 절실함을 잘 보여준다은 1945년 2차대전 당시 미군정보장교로 이 땅을 밟은 이후
한국의 산하와 품속에 매료되어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살았습니다.
초가집을 좋아했고 막걸리를 농부와 함께 마시는것도 좋아해 누구나 어디에 가도 어울렸다고 합니다.
케스트 하우스가 몇채가 있는데 모두 한국식 가옥들입니다.
이곳에서 하루밤 자려면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1962년 농원 부지로 구입한 오천평을 시작으로 18만평에 이르는 수목원을
오로지 개인의 사자재를 털어 조성하였습니다.
아마도 금융계 업을 하면서 돈을 버는대로 이곳에 땅을 사고 나무를 사서 심으면서 정성으로 가꾸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보다 나무를 더 사랑하여 한국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미국에 사는 어머니를 끔찍이도 생각하며 한국생활을 자세히 편지로 알려드렸고 나중에 한국에 귀화하면서
어머니의 허락을 3년동안이나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루에 세갑피는 헤비스모거엿지만 어머님이 이곳에 와서 3년동안 사시는동안은 한개피도 피지않았습니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보낸 50년의 생애를 수목원 조성을 위해 살았고
천리포수목원을 한국인에게 조건없이 물려주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현금까지도 수목원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민병갈박사의 천리포수목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인 것입니다.
입장료 만원을 내고 들어왔지만 그만한 값이 있는 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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