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버님 생신으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하고 부모님 집으로
다시 올라가 과일을 먹으며
담소하는중...조카녀석땜에 배꼽을 쥐고
한 30분 가족들이 웃음바다를 이뤘지유~
국립 어린이 도서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막내 여동생의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녀석 첫사랑의 싹이 자라고 있었죠..
제 무릎에 앉아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다니기 재미있어?”
“응”
“좋아하는 애있어?”
“응...혜린이랑 결혼할거야”
“어린 초등학교 3학년이 결혼해?”
“어리면 어때? 좋아하면 결혼해야지”
“혜린이에게 얘기했어? 결혼하자고”
“아니...쑥스러워서...못하겠어”
“결혼하려면 혜린이에게 정식으로
얘기해야지...좋아한다. 결혼하자라고“
“말못하겠어...그래도 결혼할거야”
“장모님은 만났어? 혜린이 엄마?”
“아파트에서 맨날 만나...”
“장모님께 정식으로 인사해야지”
“못하겠어”
“장모님...저~혜린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고생안시키겠습니다...장모님...“
“얘기 해야만 돼???”
“그래...얘기 해야지...너말고
걔 좋아하는대 많으니깐...빨리
얘기해...“
“정말 나말고 딴애들도 좋아할까?”
“그렇다닝게...셋째 외삼촌도 경험있어 알아”
조카녀석 말한마디 끝날때마다 웃음은
파도가 되어 아버님 집에서 출렁이었습니다.
역시 집에는 어린아이가 있어야 웃음이
존재한다는걸 느끼는 순간이었죠.
조카녀석은 같은 아파트 사는
자기반 부회장 여학생을
좋아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우리의 어린시절 첫사랑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시작되는가 봅니다.
참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짝사랑의 싹이 튼 모습을 보았습니다.
풋풋하고 온통 설레임으로 가득한 녀석...
새싹같은 그녀석 머리칼이
제 손가락 속에서 살랑살랑
햇사랑 냄새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풋풋한 사랑의 냄새가
녀석의 마음속에서 가슴 앓이
되어 내손에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의 몸부림 속에서
순수한 표현을 거침없이 해내는
어린 가슴의 이야기 속에는
골짜기에서 흘려내려가는 맑고 맑은
시냇물처럼 투명한 사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45년이 지난 어느날
이럴지도 모릅니다.
조카녀석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서
그곳에는 그옛날 초등학교때 좋아했던
혜린이가 아담하게 통통해진 중년의
여인네를 만날지 모릅니다.
흰머리 염색하고 나타난 그녀는 여전히
조카에게는 천사였습니다.
그때서야 고백을 합니다.
“나...너 초등학교때 좋아했는데....”
“왜...그때 말 못했어?”
“그때 결혼할려고 했는데...”
“결혼하자구 하면 했지”
어느사이 부끄러움도 쑥수럼도
순수함도 사라진 빛바랜 사랑의
고백이 되어버렸습니다.
전화번호도 알아서 전화 통화도
제법 자주 합니다.
특히...술한잔 했을때 어릴적
좋아했던 혜린이가 생각나 핸드폰
동창회 전화번호부를 찾아 전화합니다.
“혜린아... 밥 먹었어?”
“지금 먹고 있는 중이야”
“많이 먹어야 해...혜린이는 약하닌깐”
“그래...많이 먹을게...”
“목소리가 감기 들은것 같네...”
“아녀...밥먹느라고 목소리가 안나오네..”
“감기 들면 안되... 혜린이는 몸이 약하닝게....”
녀석... 진작 어릴적부터 챙켜주고
전화해서 사랑을 차지 하지....
참으로 때늦은 사랑고백을 하는
중년의 맥빠진 사랑입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
모르고 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랑 고백하며 사는 모습은
또다른 순수함이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월의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그 눈부신만큼의 첫사랑의 싹을
키우는 조카녀석처럼 순수함이
현실의 이야기로 커가길 기원합니다.
세월이 다지나가...
우리처럼 옛사랑을 술에 취해
세월에 취해서 고백하는 향기없는
사랑고백이 안되길 바랄뿐입니다.
그래도...
첫사랑은 시들지 않습니다.
피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뿐이지요.
눈부신 햇살로 푸르름이
온 산을 물들인 이 좋은 계절...
추억이나 가득 담아 사랑찾아
웃음지으며 사는 그날까지
지켜보며 살고 싶습니다.
2006.5.26 천안/영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