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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인생의 중간을 회상한다.

          
        
         
        
          내인생의 중간을 회상한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전직회사 직원자녀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다니던 옛회사라면 경방기계... 경방크로바 라는 모델로 사무용 타자기를 생산하던 (주)경방의 자회사이다. 내가 30대 중반에 입사하여 50대초반에 회사를 나왔으니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회사...경방기계.... 당시 한국에서는 타자기 만들던 회사가 두군데 있었다. 동아마라톤과 경방크로바... 두회사 모두 컴퓨터 세상이 되는 바람에 지금은 없어진 회사가 되었지만... 한때는 사무기능에서 필수적이었던 타자기... 특히 여자상고에서는 타자를 못하고는 졸업을 안되고 취업에서도 가장 필요한게 타자기 급수 자격증이었다. 내가 컴에 익숙한 것도 타자기 덕분일게다. 매일 타자기를 생산하며 품질검사를 하던 타자솜씨가 있기에 또래의 남들보다 속도가 있다. 공장의 타자기 라인을 중단한게 96년이었다. 매년 타자기 생산을 중단할거라는 예상은 몇 년전부터 예상을 하였지만 거센파도처럼 밀려오는 컴세상을 전기없는 나라에 타자기 수출로 이겨나갔지만 더 이상 컴퓨터 파도를 감당할수없었던 회사는 직원들에게 회사정리를 발표하였다. 타업종 전환을 조금씩 준비하였던 회사는 예전부터 자동차부품을 반월공장에서 시작하고 있었고 은행에서 쓰는 지페계수기,자동판매기 공장을 인수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전직원을 재고용하기는 힘들어 정리해고 할수밖에 없었다. 당시 생산부장을 맡고 있던 나는 마침 충남 예산에 자동차 공장인수를 하여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되어 다행히 회사생활을 이어갔지만... 정들었던 부하직원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걸 봐야하는 아픔을 격었다. 울산 현대차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지방근무를 싫었던 나는 서울쪽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무역회사를 거처 경방기계로 직장을 옮겼다. 처음부터 타자기 생산부에 배치되어 수많은 근로자 들과 웃고 울고 납기에 맞춰 생산을 하면서 현장 생산라인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냈다. 노사분규가 심했던 구로공단에서 우리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며 자유화바람이 불고 노조의 거센물결이 회사에 밀려와 보름동안 일을 못하면서 노조와 회사관리자간 대치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니었을까? 노동조합 민주화를 넘고 넘어 그런대로 수출도 잘되어 타자기 생산은 영원하리라 생각했다. 컴퓨터는 게임기능이나 재미로 쓰는 기구정도가 될 상품일거라 생각하며...타자기를 밀어내는 무서운 제품으로 보지않았다. 자전거 다음으로 자동차가 나왔지만 건재했고 디지털 피아노도 일반 피아노를 몰아내지 못했듯이 컴퓨터가 나와도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눈앞에 닥친 회사운명을 보면서 나는 정들었던 구로공단을 떠나 가족들과 예산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회사는 집과 이사비용도 주어 시골생활에 적응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예산을 그리 낮선곳이 아니다. 고향 해미와 가까운 예산이라는 곳... 큰형님이 예산농고를 나와 대학을 간곳... 고조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덕산 선산이 있는 곳... 다행히 애들이 시골학교 생활을 잘 적응해갔다. 아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예산에서 졸업했고 딸은 초등2년 중학교 고등학교를 예산에서 졸업을 하였으니 예산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지금생각하면 내직장생활에서 가장 재미있게 생활하고 보람된 황금기를 예산에서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8년여 예산에서 생활하던중 회사에 위기가 찾아온다. 타자기 생산을 중단하고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던 회사는 (주)경방 의 모기업의 방침에 따라 젊은 벤처사업가에게 매각을 발표하였다. 경영진이 바뀌면서 각 사업장에 있던 임원과 간부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당시...구로공장 반월공장 예산공장 3군데 있었는데... 임원들이 거의 모두 떠났다. 간부였던 나도 찬밥신세가 되는 모양새가 되가고... 한참 후배들이 젊은사장을 등에 업고 밀려 올라오는 연공서열이 무시되는 상황이 계속될즈음... 몇 년전부터 나에게 자기회사로 올 것을 부탁하던 고교동창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떠나자 언제올지 모르는 권고사직보다 내손으로 사표를 내자. 그리고 예산을 떠나 천안으로 이사왔다. 정말로 씁슬함과 서운함을 머릿속에 남기면서... 천안으로 이사오고 핸드폰번호도 바뀌고 전회사람들과 단절이 시작되었다. 나 자신도 회사를 잊으려 했는지 아무에게도 연락을 안하고 그저 천안생활에 몰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4년여만에 전회사의 상무로 근무하던 윗사람이 전화가 왔다. 어떻게 살았느냐하면서 왜 그리 연락을 안하고 사느냐 질책하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물어 핸드폰번호 간신히 알아냈다면서...이번에 어느직원 자녀 결혼식이 있으니 꼭 보자고 하신다. 그리고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옛회사 직원들... 너무 반가워 하는 직원들을 4년여 단절만에 만나니...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어느직원은 인터넷 블로그에 들락거리다가 내블로그를 발견하고 매일 읽고 있다면서 소식을 잘 알고있다. 인연이란게 쉽게 단절되는게 아닌가싶다. 가끔은 세월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좋은 것 같고.... 퇴직직원들이 카페도 개설했단다. 다시 이어진 인연.... 잊고 싶지 않음인지 연결이 되었다. 민들레 홀씨되어 먼길 여행떠났다 생각하였는데... 계절의 여왕 오월 라일락향기 앞세워 오월의 인연이 기다린다. 화려한 내모습은 아니지만... 청정한 초록의 향기를 주는 기분을 주고싶다. 항상 설레임으로 기다리는 그런사람으로... 2007. 5. 12 아침 천안/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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