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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서울우면동 생활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연애박사들

작성년도: 1995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연애박사들... 한번도 멋있게 연애를 못해본 제가 연애박사를 논한다는게 이상하구만 유... 하지만 딴사람들이 한 연애를 한번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저 생각나는대로 뚜드려 봅니다. ?첫번째? 80년을 해로한 어느 부부 최근 어느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분은 93세로 돌아가셨는데... 그의부인은 95세 로 작년에 돌아가셨다. 14살에 결혼 했으니 80년 가까이 해로하고 이제 두분은 땅속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살 것이다. 그분이 평생 무엇을 했건 상관없이 나는 참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살기가 80살 살기도 힘든데 80년을 같은 방에서 살을 맞대고 살었다는 그 자체 하나로 성공한 인생... 행복한 결혼... 행복한 연애를 한 연애 박사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렇게 살기위해선 그부부는 연애 하는 기분으로 오손 도손 살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매일 싸우고 바가지 끓는 부부관계였다면 그부부의 부 부생활은 몇십년 단축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삼년전 우리 부모님 금혼식을 간단히 해드렸는데... 즉 50년 결혼생활 기념... 참 오래도 같이 사셨다고 속으로는 생각 했는데... 엇그제 돌 아가신 그부부에 비하면 놀랄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두분만 살고 계신데 살짝 들여다보면... 젊었을때 즉 우리가 어 렸을 때보다 두분이 사이좋게 사시는걸 본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 아버지는 어머니의 요청을 전에는 반대하고 무시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모두다 받아들이는 역전된 모습을 본다. 조금만 더 빨리 두분이 서로 그렇게 살으셨다면 좋았을텐데 하고 옆에 서본 내가 아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에 넘치는 모습이었을덴데.... 사람은 두번 신혼을 맞이 한다는 옛말이 틀린게 하나없다. 젊었을때 갖결혼해서 신혼재미... 애들 다키우고 둘이만 사는 신혼재 미... 나도 과연 얼마나 그런 재미를 느끼려나... 지금에서야 연애박사가 되신 우리부모님... 꼭 80년 해로 하시길... ?두번째? 국민학교때부터 사귀어 일찍결혼한 부부 이들 부부는 진짜 연애박사... 내가 자란 동네는 서해안 어느 해안마을... 바다 물 들어왔을 때는 동 네앞까지 출렁이다가 썰물로 빠질 때는 끝이 안보일정도로 빠지는 동네 이었다. 해안가로 뻗어있는 백사장... 정말 연인이라도 있으면 서로 뛰어가고.... 넘어지고... 안고... 뒹굴고...그야말로 연 애하기 좋은 아름다운 동네였는데.... 아름다운 해안가로 숨어 장난하기 좋은 동굴들이 그렇게 많았다. 어려서 우리들의 놀이터... 그런 동네에 살면서 연애 한번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여자만 보면 도망다 니며 자랐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고 대학 갈무 렵 고향에 내려가니... 나하고 같이 자랐던 용팔이(가명) 녀석이 결혼 해야한댄다. 식은 안올렸지만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에... 갖 스물나 이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임신만 했다하면 결혼하는건 당연지사로 여기던 시절... 용팔이 녀석은 성격이 명랑하고 어려서 장난기가 많았다. 곧 잘 여자애들과 농담도 잘하고 하더니만 그동네 사는 한살 많은 선배와 눈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둘이는 바닷가 동굴에서 자주 만났다는 얘 기를 동네사는 친구에게서 듣고서... "역시 연애박사는 틀리구먼... 언제 그렇게 된냐? 애기는 어떻게 낳는 지 알기나 헌다니?..." 하고 순진하게 물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친구라고 오랜 만에 안 가볼수가 없어 그의 신방을 방문하고선 얼굴이 빨개가지고 얼른 돌아왔다. 그의 아내 보기가 내가 부끄러워 오랜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부끄럼을 많이 탓다. 나보다 한참이나 빨리 어른이 된 그 친구의 뒤에 �따라 살아가는 나는 가끔 그 연애박사가 부럽다. 벌써 그녀석 아들은 아마도 군대도 제대해서 결혼을 하여 손자도 보 았댄다. 행복하게 잘사는 모양이다. "부전자전... 그녀석도 연애박사가 되서 일찍 결혼 했구먼..." 친구들 끼리 만나면 얘기한다. 연애박사가 된 덕에 일찍 은퇴하여 손자 재롱을 보고있을 그 친구 를 본지도 이십년은 되는 것 같다. 인생을 앞서간 그친구가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내가 산 방법이 나쁘 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세번째? 모든 환경이 반대인 속에서 결혼한 부부 지금 30대인 이 사람의 결혼은 참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었다. 처음 두사람이 만난 곳은 회사... 제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이친구는 대학을 졸업후 관리자로서 일을 하였고 상대 여자는 현장에서 기계를 조립하는 일을 하는 현장사원... 시골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여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형편을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공장을 다니던 중 두사람은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학력차 문제는 둘째치고 두사람은 동성 동본으로 우리나라 법률상 결 혼이 불가한 상황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큰 장애물이었다. 거기다가 시골에 있는 본인의 부모님은 물론 여자쪽의 부모님이 모두 반대를 하니.... "니가 뭐가 못나서 중학교 졸업한 여자하고 그것도 동성동본하고 결혼 한다니 말이나 되느냐?" 부모님은 물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몇 번이고 망설이게 되었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여자쪽에서도 포 기하자고 몇번이고 그에게 말했고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은 고통 을 이길 자신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가 찾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더이상의 장벽은 없다고 그는 밀고 나갔 다. 우선은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다음은 여자쪽의 부모님... 학 력 성격은 여자쪽에서 볼때 더할나위없이 좋았지만 동성동본에게 시집 을 보낸다는 사실이 용납이 안되었다. 여자쪽 부모님도 신랑측의 부 모님의 허락이 나왔다는 얘기에 조금씩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하여 결 국은 결혼... 다음은 혼인신고... 그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 만 모두 잘되어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이들을 사랑에 성공한 연애박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네번째? 남편의 사업실패로 가산탕진하고 다시일어선 부부... 이경우... 내주위의 집안사람 이야기... 십년전인가...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집안의 잘아는 나보다는 십년정도 의 연상의 집안의 형님이었다. "잠깐... 만나고 싶은디... 나올수 있는감? 나여기 서울에 왔어..." 시골 고향에서 철물을 취급하며 건물 짓는데 전기공사등을 하며 돈을 많이 번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갑자기 서울에 볼일이 있나 해서 나갔더 니... 그게 아니었다. 공사를 하다가 부도가 나서 도망 나온 몸이었다. 서울에 임시로 뭔가 할 수 있는지 아는곳마다 알아보는 중이었고... 이제 알몸 하나만 남 아있는 신세였다. 나로서도 도와주고 싶어도 할수있는일이 별로 없어 위로의 말을 나누 고 헤어졌는데... 여자쪽 집안에서도 이혼을 하는게 어떤지 얘기가 나오고 그야말로 집 안은 풍지박산... 하지만 부인은 남편을 믿고 따랐다. 몇년후 두부부는 다시 일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래부터 부지런함이 타고나서 그형님은 트럭을 한대사서 채소 장사를 시작하였다. 가락동시장을 가장 먼저 �가서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사 서 동네 몇군데 단골손님을 확보... 몇년만에 가게를 살정도로 많은돈 을 벌었다. 시골에 형님은 그의 채무를 해결해주어 이제는 안정된 삶 을 살고 있다. 두아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어있고.... 두사람의 사랑으로 집안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옛날처럼 욕심을 안부 리고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댄다. "그 어려움을 견더낸 내집사람이 최고여... 옆에 없었더라면 난 죽었을 거구먼.." 그형님은 말한다. ?다섯번째? 맛선본지 두달만에 결혼하고 7살나이차이 극복한 부부 이는 본인 이야기... 어느 영화에 101번째 선본남자라는 게 있었다는데... 나는 그 만큼은 선을 못 보았어도... 그정도는 안되어도 수십번은 본것 같다.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주위의 많은사람들이 소개를 하여 이사람 저사 람 선을 보고 있었다. 결혼을 결정한다는게 그렇게 힘들었다. 내가 좋다고 하면 상대방이 싫다고 하고 상대방이 좋다고 하면 내가 싫고.. 그럭저럭 설흔이 넘어가고 어느날 시골 외할머니가 선보러 내려 오라 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시골여자는 촌스러운 생각이 들고 적어도 대 학물은 먹은사람을 원했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몇번 연락이 오고 마침 중간 충남 홍성 근처에서 한번 선볼일 이 있어 두군데를 한꺼번에 보고 외가집을 오랜만에 들릴겸 가기로 하 였다. 그날 이상하게도 홍성에서 본 여자는 만나자 마자 억지로 나왔 다고 하면서 퇴자를 놓는 거였다. 나이차이 7살이 많았던게 싫은 모양이다. 설흔한살 노총각이 장가가기가 이렇게 힘든가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 였다. "내 원...참" 처음 느끼는 절망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외갓집에 도착하여 그녀의 집에서 현재의 집사람을 만났다. 시골에서 만 커서 그런지 말이 통할리 없었다. 한마디로 순진 덩어리... 그저 시골 여고를 나와 농촌살림 밭매다 들어왔는지 손은 꺼칠고... 키는 170가까이 되는 덩치 하나만 맘에 들었다. 그녀와의 나이차이도 7살.. .. .. 서울로 돌아와 부모님이 그런 여자가 좋다고 하시고... 나는 홍 성에서 나이차이가 많다고 퇴자를 맞는지라 그저 그렇다고 한마디 했 다. 그다음... 그쪽 집안도 막내딸이라 빨리 시집보내고 싶었는지 상대 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선본지 두달만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사실 결혼식하면서도 내가 이결혼 꼭 해야하나 하는 맘이 있었다. 이 소리 집사람이 들으면 서운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랑이란걸 전연 느끼지 못하고 설흔하나 노총각 딱지를 떼고 싶은 심 정하나로 결혼했다고 할까? 그렇게 몇년이 흐르고 벌써 결혼 14주년이 다되가는데... 지금의 내마 음... 이세상 그 누구보다도 집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하나만 믿고 모든걸 희생하며 사는 내 집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연애결혼을 못했으니 연애하는 맘으로 살으려 한다. 한마디로 연애박사가 되었다. "당신 총각때... 그런식으로 여자들에게 했더라면 연애박사가 되었을 거구만유... 외갓집에 그렇게 자주오면서도 그옆집에 사는 저를 그렇 게 모르고 지나쳤대유... 미래 마누라 감인지도 모르고..." 집사람이 놀린다. "그때 내가 연애박사였다면 당신도 못만났을 거구먼.." 연애와 결혼... 참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쉬운일이라고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따지고 계산하는 연애와 결혼치고 별로 행복하질 못하더라 구요. 만나서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아껴주려 노력하는 것 이게 바 로 성공하는 결혼이라 생각하구요... 연애박사되는것 별로 어려운일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잘해주려 노력 하고 상대에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것 그게 바로 연애 박사 되는 지름길이라 생각되는 구만유... 읽어주셔 고마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