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년도: 1995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젊었을때 겪어보면 좋은 경험...
젊을때... 제가 말하고 싶은 젊은 시절은 학교생활 마치기 전입니다.
굳이 나이를 얘기하라면 20대 중반까지라고 할까...
20대 후반부터는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 나이이니 젊은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어른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저도 40대 중반이니 중년의 나이가 되어 지나온 나날을 조금씩은 생각
하고 후회도 하게 되는데...
20대 전에 경험을 하면 좋은 것을 다섯가지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 여행...
여행을 할 기회가 가장 많은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30대때... 40대때... 50대때... 천만에 말씀이다. 가장 좋은 때는
학생때인것 같다. 힘이 철철 넘치고 어떤 난관도 이겨나갈 자신만만
할때 바로 학생때인 것이다. 결혼해서 직장생활 하다보면 여행은 꿈도
못꾼다. 물론 직업상, 업무상, 여행이라고 있지만 여유는 없다.
마음의 여유... 그게 문제인데 학생때는 사실 마음의 여유는 있을때라
고 생각한다. 취직걱정 ? 시험걱정? 물론 그런 걱정도 있겠지만 눈
앞에 닥친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내 뇌리 속에 사라지지 않는 여행이 있다면 고등학교 2학년때
제주도 무전여행, 3학년때 강원도 여행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커서 어른이 되어 해외에서 근무도 해보고 해외여행을 가봤지만 그
때 여행한 느낌은 아니다.
요즘은 해외 여행도 자유로워져 배낭을 메고 해외로 나가는 학생을 많
이 본다. 그 어느때 보다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되어 부러운 생
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지금 20대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경험을 만끽한다는 건 바로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을
주기에 여행을 할만하다.
둘... 가난...
웬 가난? 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은 힘들지만 한번정도 경험해보면 이것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좋은 보탬이 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사는건 억울한 거지만 그것이 바로 젊었을때 경험은
자기인생의 기초를 튼튼하게 한다고 할까..
.가난했기에 그것을 극복 하기위해 얼마만큼의 피나는 노력을 해야하는
가? 지금의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회장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들은
바로 그가난이란게 큰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났다. 사람
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의 아이들... 내자식을 포함해서 솔직히 걱정이 된다.
너무 가난을 모르고 자란 녀석들이라 자기들 앞길을 잘 뚫고나갈지 가
끔은 걱정이 되지만... 물론 그들은 그들 환경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나와 다르겠지... 또 달라야되고 그래서 자식들에게 내가 못한 호강을
시켜가며 키우는지도 모르겠다.
먹을게 없어 보리밥... 수제비...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우리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내자식들의 호강은 내 의식에서만 호강인가 보다. 실
제로 내자식들은 자기들이 부자라고 생각지 않고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더 높은 곳을 향하는게 인간의 욕심이 아닌가...
가난... 한번 정도 격어볼만한 경험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야 만족
도 많아지기 때문에... 하나 하나 극복하고 해나가는 만족...
셋... 이별...
이별을 해본 경험... 솔직히 없다.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 강원도 주문진에 사는 학교 친구가 있었다.
2학년 여름방학때 그의 집에 가서 강원도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즐겁
게 지내고 집에 왔었다.
여행이 끝나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너의 집에가서 신세 많이지고 즐거운시간 많이 가졌다. 새학기에 만
나면 우리 멋진 우정을 나눠보자"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석은 새학기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때
그의 형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편지를 쓰면서 나는 울고 있네... 자네 친구 xx는 내동생이지...그
녀석이 갑자기 병이나서 이세상을 떠났다네... "
대충 그런 내용의 장문의 편지가 나한데 왔었다. 참 황당한 내용이
었고 일단 믿으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여름 방학때 그렇게 건강한
녀석이 죽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태어나서 처음 소리없이 흐
르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면서 계속 그녀석이 돌아오길 기
다렸지만 안왔다. 그런 이별은 두고두고 나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런 친구와의 이별...
그때 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한참이나 생각케 하였다.
주문진에 갈때마다 그친구의 명복을 빌고... 지금도 그의 웃는 얼굴이
생생히 남아있다.
애인과의 이별은 연애경험을 하지 않아 안됐지만 할만한 이야기가 없다.
넷... 아르바이트...
학교 다닐때 아르바이트 다운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못했다.
집에서 장사를 하였기에 시간 나는대로 도와주는게 고작이었고 그것은
우리집의 생업이었다.
농사짓던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와 하셨던 것이 미곡도매상...
시골에서 쌀을 한차 싣고오면 아버지는 이가게 저가게에 도매로 넘겨주곤
하셨는데 우리 형제들을 태우고 다니며 쌀가마를 내려주곤 하였다. 아마도
아버지에겐 큰 일꾼들이었을 것이다. 모두 대학생되는 아들들을 태우
고 다니셨으니...
요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일용직으로 대학생 5-6명을 고용하여 시켜
보았다. 내가 학교 다닐때 하던 그런 일보다 참 편하고 일한 만큼의
댓가도 준다고 생각한다.
한결 같이 이런 생산직에서 일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참 건
실하고 성실한 면을 많이 읽을수 있었다.
한 학생은 한달동안 일한후 국내 일주를 한다며 인사하러 왔다.
"참 장하다. 너 같은 아들을 둔 아빠는 참 행복하겠다. 여행 잘 갔
다오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하도록..."
대충 그런 이야기하고 헤어졌는데 지금쯤 학업에 열심히 충실히 하리
라 생각한다.
학생때의 아르바이트 좋은 경험이다.
다섯... 실패...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참 많이도 들어본 말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가 먹을수록 실패의 두려움은 커진다. 나자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실패의 두려움이 커서 함부로 시작 못한다. 처자식이 나만
보고 사는데 함부로 새로운 것을 할수 없다.
그래서 실패를 하려면 젊어을때 해보면 새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진다. 한번 경험한 실수를 두번 다시 않는게 사람이다. 작은 실
수를 거듭한 발명왕 에디슨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조그만 실패가 두려워 큰일을 못한 나의 경우도 몇번있다. 그때 그런
실패를 덮어두고 다시 시작했더라면 하는 경우다. 실패를 실패로 받
아들이고 다시 시작 못한것을 후회 하는 것이다.
한번의 실패로 영원히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나도 그런것을 이겨낼 용기가 없어 현재의 나 자신 위치 뿐이
못된지도 모르지만...
암튼 젊었을때의 실패는 영원한 선생님만은 틀림이 없다.
그저 갑자기 생각난 몇가지를 얘기 해봤구만유...
좋은 경험 많이 많이 하셔유... 언젠가는 자기 삶의 활력소가 될것이
틀림 없으닌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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