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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여행

11박 12일 북유럽 6개국 여행기

지난 2017년 9월18일 출발 9월 29일 인천공항 도착하는 북유럽 6개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북유럽여행 2일차되는 날부터 여행기를 간단하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호텔방에서 잠시 쉴때마다 조금씩 여행느낌 남겨보았는데 미흡하지만  북유럽 6개국 여행기를 올립니다.

참좋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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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페데르부르크에 가기위해 모스코바 공항에 다시왔다.

저녁시간 9시5분 출발인데 3시간전에 도착해서 수속하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모스코바 붉은광장과 크레믈린궁을 관광했다.

모스코바 붉은광장과 크레믈린궁은 소련의 상징적인 장소로 유명하다.

호텔에서 출발하여 그곳까지 가는데 차는 여전히 막히며 서다가다를 반복한다.

날씨가 역시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한 기온이 겨울옷을 생각나게하여 얇은 잠바를 꺼내입었다. 한국과 완연히 틀린 것은 날씨가 인상적이다.

현지 가이드 안내는 모스코바에서 20년을 살아온 젊은 안과여의사님이다.

그녀는 20년전 초등학교 1학년때 당시 대우전자 주재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해서 살아오며 이곳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마친 유학생이었다.

모스코바 의과대학을 장학생으로 마치고 이제 병원에서 안과의사로 근무하는 의사의 신분인데 여름철에는 환자가 적다보니

3개월 쉴때 가이드부업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일이지만 이곳은 여름철 휴가때 3개월은 해마다 되플이 된단다.

우리나이로 28살된 앳된 안과의사로 가이드로 재미있게 모스코바라는 도시 러시아의 문화를 잘 전달해주었다.

3살 더많은 언니도 똑같은 안과의사로 이곳 모스코바에서 근무하며 살고 있단다.

참 대단한 일이다.

러시아의 문화를 그들과 똑같이 소화하며 살아온 인생으로 헤어질때 그녀에게 내가 몇가지 물어보았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 살 생각이 없으냐고 물으니 그녀는 전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댄다. 이곳 생활에 너무 익숙해지고 살기가 좋아

작년엔가 완전히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 국적을 얻었댄다.

완전 러시안이 된 것이다.

타향도 오래살다보면 고향이 되어버린다는 사실, 정말 사실이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똑바른 생각과 꿈을 갖고 외국에서 살면서 자아를 실현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는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가를 생각해보았다.

부모님도 현재는 아버님은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있으나 어머님은 자신들을 지키며 같이 살고 있단다.

부모의 입장은 아마도 다를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게 그들의 삶의 의미로 생각한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외국에서 잘 커줘서 현지의 생활에 만족하며 좋은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이상의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게 항상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그녀들 자매는 외국이라는 문화에서 현지인과 동화되며 살아온것을 인정했을 것이다.

수많은 우리나라 교포들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하다.

그 자매들은 그래도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호텔에서 보니 모스코바 관광지는 중국인들로 호텔이 반은 차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이제 한국대신 중국을 찾아오는 모양이다.

호텔 로비에서 중국관광객을 만나 서투른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젊은 여성인데 한국에는 가본적이 없다고한다.

몇마디 중국어로 더 시도를 하였지만 아직도 내 중국어 실력은 멀었다.

서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다는 것은 한참을 더해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스코바 가이드가 말하길 외국인이 가장 배우기 힘든 외국어는 첫 번째는 러시어이란다.

발음보다 문법이 복잡하댄다.

두 번째로 힘든 언어는 중국어로 발음이 배우기 힘들다.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어는 실제 발음이 어렵고 똑같은 발음에서도 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지니 더 힘들다.

사드의 영향으로 한국의 관광은 뒷전이 되버렸다.

모스코바 관광지를 보니 중국어 안내판은 가끔 눈에 띄는데 한국어는 보이질 않는다.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오는지 깨닫을수있는 곳은 모스코바 붉은광장과 크레믈린궁이다.

관광객의 거의 대부분은 파란깃발을 든 중국인들이다.

빨리 사드문제가 해결되어야 한국의 관광사업도 꽃을 필 것이고 중국인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국은 관광에서 얻는 것은 없을 것 같다.

샤드로 인해 수조의 관광수익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모스코바의 시내를 돌아다녀보니 유럽풍의 옛 건물이 아직도 많이 보존되어있었다.

시내의 건물들이 현대식보다는 옛건물이 있으니 보기가 좋다.

모스코바를 떠나 헬싱키로 왔다.

필란드의 수도인 헬싱키까지는 비행기로 러시아 국경도시까지 와서 다시 버스로 3시간 가까이 달려와 도착하였다.

필란드의 역사를 가이드를 통해서들으니 우리나라 역사와 비슷했다.

스웨덴 식민지 500년 거쳐 러시아 식민지 100을 보낸 암흑기의 오랜세월을 보내고 올해로 독립 100년을 맞이했단다.

그래서 이쪽 헬싱키에는 러시아의 정교회성당을 비롯한 식민지의 흔적이 아직도 있고 러시아의 황제동상도 헬싱키광장에 있지만

없애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이웃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기가 싫고 그 황제가 핀란드 민족성을 보존토록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독립의 바탕이 되었다.

날씨는 흐리고 약간의 이슬비도 가끔 내린다.

우리나라 초겨울의 날씨를 보이는 것 같다.

옷은 약간 두터운 옷을 입으니 딱 맞다. 9월 중순에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를 보이는 것이다. 바닷가 시장구경에 나섰다.

과일과 각종 먹거리가 나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체리를 한봉지에 8유로에 팔아 한봉지 사서 바닷가에 앉아 먹었다.

 맛은 약간 단맛이 나면서 먹을만 하다.

저녁때 스웨덴으로 가는 크루즈 유람선을 탓다.

처음으로 타는 크루즈라 약간의 설레임이 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셈이다.

우선 방을 가보았는데 2층침대에 샤워실달린 화장실까지 같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방을 선택하려면 십만원을 더 내야한다.

창문이 없지만 창문처럼 거울을 설치해 놓았다.

식사는 뷔페식당이라 종류가 다양하다. 고기부터 생선, 채소,요구르트 대부분 양식으로 구성되어있는 선박식당이다.

그날따라 음료가 한잔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실수가 있어 맥주를 두세잔 먹은 것 같다.

역시 알콜이 내 몸에 잘 안맞아 많이 마시는 것은 포기하고 어느정도 배불러 와서 그대로 방으로 돌아왔다.

이래저래 피곤한 몸 배에서 뜨거운물에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니 잠이 잘 온다. 자면서 잠결에 배가 흔들리는 느낌이 가끔 있고

소음도 느껴지지만 그런대로 잠자는데는 지장이 없다.

큰 소음이 들리며 흔들릴때는 혹시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세월호의 사건이 머리에 나타나며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조금 지나니 잠잠해져 다시 잠을 청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음이 나고 배가 흔들릴때 몇몇사람들은 방밖으로 나와 갑판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말이다.

배로타고 하룻밤자는 여행이라 짧은 크르즈여행이었지만 그런대로 추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배를 타고 가는 낭만적인

감정이 섞여있었기 때문에...

이제 버스를 타고 하루종일 이동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에 국경을 넘는 일이고 노르웨이로 가서 본격적인 피요르드 관광이 기대된다.

역시 노르웨이의 전원풍경은 스위스 풍경과 흡사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이나라 사람들은 듬북안고 살아간다고 느껴진다.

대자연은 웅대하고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주고 어머님 품속같은 편안함을 준다.

초원의 밭에는 대부분 목장들이다. 때로는 양들이 때로는 말이나 소들이 한가로이 초원목장에서 풀을 뜯는 모습은 너무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계곡사이로 차가 지날때는 거대한 바위산들이 둘러쌓여 언제 어떻게 저런 자연이 만들어졌는지 의문점이 꼬리를 문다.

스웨덴을 지나 노르웨이의 한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해발 1000미터에 가까운 산속에 산장처럼 만들어 놓은 숙소로 주위에는 눈이 쌓여 운치를 더해주었다.

시내 관광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수있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먼저 만날 일정인 모양이다.

내입장에서도 시내의 유적보다는 이런 자연과 접하는 관광이 더 좋다.

초원과 계곡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를 통과할 때 잠시 쉬어갔다.

조그만 시골동네에서 이런 큰행사를 열다니...

호수에 배를 띄워 선수들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큰비용을 안들이고 대부분 재활용할수있는 친환경 동계올림픽으로도 유명하단다.

이곳에서 두시간을 이동하여 오따로 가는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계곡과 물... 높은 산에는 빙하인지 눈인지 하얗게 덮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와~와~하는 탄성이 절로나는 경치가 계속이어진다.

오따 숙소에 도착하니 산위에 있는 숙소라 눈이 온 흔적이 보인다. 현관앞에는 눈을 치워 쌓여있고 주위의 산에도 눈이 그대로 있다.

역시 북유럽은 추운지방이다.

 

노르웨이도 상당히 북쪽에 있는 지방이지만 이런 계곡들과 피오르드가 온기를 가두고 있어 위도가 비슷한 알래스카보다 따듯하단다.

노르웨이는 농축업 국가이고 관광국가라는 느낌이 온다.

큰 공장등은 별로 보이지 않고 주로 목장과 호텔건물이 많이 있다.

오따 호텔방은 산속이라 그런지 추운 느낌이 들었다. 침대도 작은 싱글인데 혹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싱글을 붙여서 잤다.

오따 호텔을 새벽에 출발했다.

가는길은 역시 계곡과 초원이 이어진다.

게이랑에르 피어르드 가는길은 산길로 주로 바위산이다.

고개를 넘기전에 1500미터 정상 전망대를 잠시 올라갔다.

앞으로 십여일후부터는 입산금지가 된다, 길이 빙판길이 되기 때문에 우리팀이 거의 막차를 탄 셈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위풍경은 호수가 있는 쪽은 꼭 백두산천지같은 느낌이다.

나무들은 없고 주위 높은 산에는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천지의 풍경과 비슷하다.

해발 1500미터 전망대에 올라갔다.

구름과 바람이 지나면서 강풍으로 얼굴이 이그러진다.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10도에 가깝게 느껴지며 버스속과 밖을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 1500미터 아래 게이랑에르 피어르드가 보였다.

우리가 유람선을 타야할 곳이다.

바닷물이 꼭 호수같다.

계곡사이를 뚫고 들어온 바닷물이 호수가 되버린 것이다.

성수기에는 크루즈선박이 두어대나 항상 서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한 대도 없다.

크루즈가 오면 복잡한데 우리는 그런 피해는 피해간 것이다.

다행히 성수기가 끝나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줄어들어 게이랑아르 피어르드는 우리팀과 중국팀 일부 외국인들로 유람선이 차게 되었다.

바닷물이란게 믿어지질 않을 정도로 잔잔하다.

파도도 없고 갯펄도 없는 바다는 상상이 안되는데 이곳은 분명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바다에는 고기잡는 어선이 있어야 하지만 이곳은 없다.

유람선은 계곡을 따라 계곡의 경치를 보며 내려갔다.

세계테마기행에서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7자매 폭포에 갔는데 그곳에는 물이 흐르지 않고있었다. 9월부터 5월까지는 빙하가 얼어있어 물이 폭포로 

안내린다고 한다.

안탑깝지만 어쩔수없다.

산위에 그대로 있는 빙하가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롭기만 하다. 아직도 지구 면적의 십분의 일을 빙하가 덮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빙하가 다녹으면 해수면이 7미터나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며 해마다 해수면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단다.

노르웨이의 땅은 대부분 이런 피어르드의 형태가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신비롭다.

어제는 플롬에서 산악열차를 1시간, 왕복 2시간을 타고 경치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었는데 역시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했다.

위에서 떨어지는 폭표를 맞이했을때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폭포옆에는 수력발전소가 어김없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이곳 노르웨이는 이런 물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해서 전국토가 쓰고 남아

외국으로 전기를 판다고 한다.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라 생각이 든다. 원전도 화력발전도 없이 전기를 수력발전으로 해서 사용하고 남아돈다고 하니 말이다.

노르웨이의 물가는 비싸다. 물을 대충 예를 들어도 2유로, 다른 이웃국가들 1유로를 받는 것을 보면 알수있다.

소득의 재분배가 잘되어 대부분의 가족들이 중산층을 이루고 있다.

유전도 발견되어 석유를 수출하는 산유국인데 기름값은 우리나라 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공공장소에 가면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전기차를 우대정책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몇 년후부터는 아예 석유로 가는 전기차는 못팔게 한다는 뉴스도 들었다.

이런 추이로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전기차 우대정책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산악열차는 한국어만 안내방송하는 열차칸이 따로 준비되어있었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한국사람들이 북유럽,특히 노르웨이의 경치를 보기위해 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우리 참좋은 여행팀을 제외하고는 돌아다니며 한국 여행사 팀을 보지못햇다.

한국은 다음주 추석연휴가되면 몰려올 것으로 생각된다.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주로 중국인 관광팀을 보곤한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식당은 싹쓸이 되어 먹을게 없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이ㅣ 이제 세계여행지에서도 많이 보게되는 것이다.

어제 또 본 것이 하당베르 피어르드와 국립공원이다.

하당베르 피어르드를 건너는데 다리로 건넜다. 전에는 카페리로 이동했을 터인데 지금은 다리가 놓아졌는데 길이가 1200미터 정도인 현수교이다.

이곳을 지나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폭표를 만났다.

넓은 고원지대에서 고여있는 물들이 이곳으로 떨어져 바다로 간다.

넓은 고원지대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무지였다.

모래가 없는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토질이 나무가 자랄수없는 그런 지대라 그렇단다.

가끔 보이는 전기가 없는 집들은 어느용도로 쓰는지 모르겠다.

해발 천미터정도의 장소라 여름에는 시원할 것이고 겨울이면 눈으로 덮여있을 이런 장소를 힐링의 장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해가 질무렵 호텔에 도착했다.

황무지 고원지대를 지나니 나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집에서 전기불빛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살더니 마을이 생기고 그곳에 호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슬로로 향했다.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는 인구가 60만 정도로 천안시 인구정도이다.

시내의 시청사는 우리나라 구청사 정도의 작은 건물이고 국회의원 건물도 고풍스런 감은 있지만 규모는 작다.

조각공원에 갔는데 이곳은 한 작가가 30년동안 온심혈을 기울려 작품활동한 곳으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은 자신이 기획하고 석고상으로 만든것을 다른 조각가들이 청동과 대리석으로 작업하여 전시한 것이었다.

청동조각상과 대리석 조각품이 전시되어있는데 남성상과 여성상을 잘 형성하여 만들어진 조각상들은 사람의 살결을

느낄정도로 정교하게 되어있었다.

남성의 심볼들도 그대로 조각이 되어 가까이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만져 맨들맨들해졌다. 아이들이 맘대로 올라가 만지도록 되어 있고

일년에 한번씩 청소하고 한단다.

특히 분수대에 빙둘러 사람이 태어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표현한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의 세대가 어디인지 가보면서 이제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으로 가는구나 하며 인생의 허무를 느끼기도 하였다.

10만평의 거대한 공원이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조각품이 전시되어있으며 푸른잔디와 나무숲이 있는 공원이 너무좋았다.

오슬로는 공원의 도시라고도 할정도로 나무들이 많고 공원도 많다고한다.

뭉크의 절규가 전시된 노르웨이 최대의 미술관 오슬로 국립미술관을 관람하였다.

현지 유학생인 30살의 젊은 여학생이 가이드가 되어 우리를 안내하였다.

노르웨이 유학온 이 학생은 교환학생으로 일년 와보고 너무 좋아 다시 대학원을 이곳에 진학하여 이번 학기에 논문을 쓰고 졸업한다고 한다.

학비는 거의 면제이고 한달 생활비 120만원정도로 유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어만 잘하면 이런곳으로 유학하여 공부하는 것도 좋을 뜻하다. 3년만 거주하면 영주권을 주고 7년을 거주하면 완전 국적까지

이곳으로 하여 정착이 가능하다.

가이드를 하는 여학생은 결혼을 한 기혼여학생인데 이곳에 입양해서 온 한국인과 결혼을 했단다. 이곳은 교민은 몇 명 안되지만 입양한

사람은 몇천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단다.

전에 입양천국으로 유명하다더니 이런 국가들로 입양이 되어 살고 있는 모양이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이곳은 커피만은 한국과 비슷하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 국민들이라 대중가격으로 파는 모양이다.

커피점에 들어가 모가커피를 주문했는데 4.2유로이다. 한사발의 거품이 있는 모가커피는 맛이 좋았다. 빵하나랑 시켜서 아내와 같이 먹었더니 적당하다.

유럽에서 5번째로 큰 국가인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총 면적의 삼분의 이는 아지도 노르웨이의 숲과 큰고작은 언덕이며 오슬로에서

거리를 걷는 것마능도 삼림욕을 즐기는 것과 같다.

13세기 호콘 5세에 의해 수도로 지정되었며 독특한 형태의 건물양식은 오늘날의 오슬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아 저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리의 자동차들도 친환경차가 많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매연으로 환경이 더럽혀지자 친환경차 우대정책을 써서 니산의 리프와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크루즈선박 Dfds Seaways호에 올라탓다.

오슬로와 코펜하겐을 오가는 이 유람선은 오랜전통을 가진 텐마크 국적의 크루즈회사로 140년 넘게 북해를 항해하며 운항해오고 있다.

코펜하겐과 오슬로를 운항하는 크루즈선들은 편안하고 수준톺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길이가 170미터나 되는 유람선에는

레스토랑,바, 그리고 양질의 엔터제인먼트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항해하는 동안 환상적인 분위를 제공하고 있었다.

뵈페식당은 그어느 식당보다 맛이 있었다. 갑판을 거닐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밤새워 춤을 출수있지만 우리는 식사후

면세점에 들리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7시간을 선상에서 보내려 하니 지루하긴 하다.

거의 9시간을 자고 아침식사를 하러 7시에 식당에 올라갔다.

이미 사람들이 식당앞에 줄서있고 7시에 뵈페식당에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선상의 뵈페식당은 메뉴가 다양하고 맛도 그런대로 좋은 편이다.

과일,빵,요구르트등으로 아침식사를 배부르게 아침식사를 했다.

선상에서 와이파이는 약하기 그지없다. 사진 몇장 올리려다가 포기하고 방으로 다시 내려왔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야 현지의 다양한 정보를 생동감있게 전달 받을수있는 것 같다.

덴마크는 인구는 550만 소득은 7만불로 우리의 3배가까이 된다.

좁은 땅덩어리지만 의약품, 낙농업이 발달되어 전세계의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코펜하겐시내에 들어가니 온통 자전거 세상이다. 차도 물론 다니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인다. 젊은 아가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잘도 타고 다닌다.

애들도 태우고 다니는 엄마도 눈에 띄고 다양한 형태의 자전거를 볼수있었다.

전기자전거도 시에서 운영하는 모양으로 전용주차장에 주차하면 자동으로 충전되어 바로 탈수있다.

덴마크는 장관들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전거를 권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건강에 좋고 자동차를 그만큼 가지고 시내에 안나오니 매연도 발생안시키고 차가 정체되는 일이 없다.

이곳은 담배값도 비싸 2만원이 넘는단다.

담배피는 사람은 두가지를 국가에 기여하고 있단다.

한가지는 비싼담배값에 세금이 많이 포함되어있어 나라 재정에 기여하고 두 번째는 병이들어 일찍죽기 때문에 연금도 절약된다는 사실이다.

거리에는 담배피는 사람이 다른지역만큼 코펜하겐 시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담배값이 비싸니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한 모양같다.

유람선을 타고 코펜하겐 운하를 관광했다. 좁은 운하 양쪽에는 요트들이 정착되어있고 해상집들도 있다.

운하를 타고가며 해상집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손을 흔들면 같이 흔들어 준다.

바닷가 어디를 가도 요트세상이다. 유럽사람들은 자가용 요트가 레저의 필수품이라는 것을 들어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이 보일줄은 몰랐다.

왕궁 근위병 교대식을 가보았다.

매일 12시에 이뤄지는 교대식은 좀은 시시하다는 느낌을 준다.

근위병들의 행진이 조금 박력이 없어 보이고 절도가 없다. 이곳도 역시 자유로움이 넘치는 근위병 교대식이다.

안데르센에 대해서 이곳 코펜하겐은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어려서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안읽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릴적 감성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좁은집에서 여러명이 함께자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후원자가 있어

 라틴어를 배우면서 동화를 썼단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상이 바닷가에 세워져 가보았다.

실물크기의 사람모양으로 만든 인어공주에는 관광객들이 끊이지않게 사진을 찍는다.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 어릴적 감성을 자극해서 추억을 담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유럽의 관광지 어디를 가도 중국인들로 넘쳐난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동북아 삼국지의 전쟁을 보는듯하다. 조금씩은 다른 이들의 문화에 여행지에서 만남도 하나의 문화기행이 아닌가 싶다.

다음번의 여행에서는 좀더 많은 대화를 그들과 나누고 싶다. 특히 중국어를 유창하게 해서 중국인들과 여행지에서 대화를 하며

문화교류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있다.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 스웨덴 스톡홀름을 여행하면 내일 또 크르즈선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러시아로 들어가 귀국할 준비를 한다. 러시아 상

데부르크에서 마지막 호텔밤을 지내면 야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니 여행은 팔십프로는 완성된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현재생활에서 180도 다른 지역 문화로 들어와 현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다른 문화에 들어오면

현재 내가 살았던 생활을 다 잊게 만든다.

나같은 경우 풍경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도시의 건물이나 거리풍경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옛날 유적등은 둘러볼만하다.

스웨덴의 왼쇠핑근처에 위치한 네세로 hogland hotel에 하룻밤을 잤다,.

그동안의 호텔중에서 가장 넓고 괘적한 호텔방으로 와이파이도 잘터진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다. 어제는 그렇게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잔뜩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는 창가를 보고 있다.

유럽의 도시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이 가끔 눈에 띄고 자동차도 많이 안다니는 조용한 동네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 역시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선호하는 문화인 것 같다.

한국은 몇백미터만 가도 자동차를 끌고 가는데 이곳은 아주 장거리가 아니면 자전거롤 이용하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달리 이곳은 밋밋한 초원에 밭도 많고 가끔 목장이 눈에 띄었다.

노르웨이의 인구는 천만정도로 되어있고 스톡홀름의 인구는 120만정도라고 한다.

언어는 이들만의 언어가 있는데 독일어와 영어의 혼성 비슷한 언어라고 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북구의 베네치아라고 불릴만큼 넓은 수면과 잘 연결된 운하로 유명하다.

스톡의 원어가 통나무이고 홀림이라는 것이 성을 이야기해서 통나무성이라는 말이 스톡홀름이다.

바다에 통나무를 박고 건설한 도시이다보니 운하가 많고 곳곳이 섬이라 섬과 섬이 이어진 도시가 스톡홀름이다.

1950년 도시계획에 의해 아름다운 호수와 나무 그리고 잘 정돈된 건물등 빈민가가 없는 녹색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아직까지는 dnflskdoptuj 운행되는 직항편이 없으며 파리,암스테르담, 헬싱키를 경유하여 들어갈수있다.

스톡홀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구시가지 감라스탄지구는 왕궁,대광장, 대성당, 노벨 막물관등 볼거리가 있다.

이거리에는 중세유럽의 골목골목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사 박물관을 가보았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수스타프2세가 재위하였던 1625에 건조되어 1628년에

처녀항해 2킬로를 가다가 침몰한 비운의 전함이다.

그후 300년만에 1956년에 위치를 발견하고 침몰한지 333년만에 1961년 인양되어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였고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박물관이다.

바다 갯펄에 묻혀잇던 목재선인 이를 인양하는데는 조각조각으로 올려져 맞춰지는데만 십년가까이 걸렸다고한다.

지금까지도 내부를 조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배를 관람하며 자꾸만 세월호의 침몰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어쩔수없는가보다.

이배의 침몰원인이 무게중심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생겼다고도 한다. 세월호도 분명 원인이 화물을 실는데서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 세월호만 없었어도 박근혜는 임기를 마칠수 있었겠지만 대형 사고를 제대로 대처못한 참사가 그녀의 탄핵으로 이어져

갔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톡홀름의 날씨는 너무 괘청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한국을 떠나 이곳에 살은지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어 발음도 약간 어눌한 중년의 여인은 키도 너무 작아 작은 거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어가 능통하여 이곳에 오는

정부관리들의 통역도 자주한다고 한다.

이곳의 문화도 자식들을 고교까지만 책임지고 그후는 자식들도 부모에게 돈을 빌려 대학을 가거나 생활비를 탄다고 한다.

반드시 고교이후의 생활비는 나중에라도 꼭 갚아야한다고 한다. 이곳은 학교에서 일등하라고 안한다고 한다.

창조적인 사고를

기르는 것이 자식교육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한다.

북유럽 관광 10일째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식사를 7시 부터했는데 조금씩 먼 바다에서 밝아오기 시작했다.

항상 매일 아침 요구르트를 한사발씩 먹었다. 과일과 빵을 겹들여 푸짐하게 먹는 아침식사,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식사를 매일하다보니 살은 찌고 운동량은 적다.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하는데

이제 귀국하면 헬스크럽에 모든걸 맡겨야 할 것 같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으로 유람선을 타고 왔다.

유람선에서 3번째 잠을 자는 셈인데 이상하게도 유람선 잠자리가 좁기는 하지만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배가 약간씩 흔들리는 감이 있지만 예민하게 생각하면 그렇고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잠시 깨어다 자는 셈이지만 9시간 넘게 잠을 잔 것 같다.

유람선 안에는 수영장도 있고 사우나도 디스코뎈도 있지만 그저 밥먹고 쇼핑센터 둘러보고 오는 정도이다.

외손자에게 줄 장난감을 사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좁은 화장실이지만 샤워을 하기에는 충분한 장소다.

유람선에서 내릴때 바로 앞에 있는 친구가 자꾸 나에게 흥미가 있는지 말을 건다.

은퇴를 한 부부같은데 에스토니아로 쇼핑을 가는 사람이다.

이곳 사람들은 물가가 싼 에스토니아로 쇼핑을 자주 간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북이나 남이냐를 물어온다.

남에서 왔다고 하니 김정은이 로켙을 많이 쏜다면서 어떻냐고 한다. 난 문제가 있는 친구라고 답했다.

서울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문제가 없는지 물어온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은 북한 이라는 나라 때문에 너무 고통을 받는다.

별볼일없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나라도 다르게 보일것이다.

이런 조그만 에스토니아도 러시아로부터 독립이 되는데 우리민족은 아직도 총칼을 드리대며 으르렁 거리고 있다.

탈린은 발트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개국중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중세도시로 외세의 지배를 계속 받아와 최근 독립된 나라 에스토니아다.

골목길은 예쁜 자갈로 포장된 거리로 건물이 온통 중세풍의 건물과 성벽으로 도시자체가 중세의 풍경이 물씬난다.

 애칭이 발틱의 여왕이라고 불리운다. 구시가지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으며 그대로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에 시달렸고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현재의 에스토니아가 자리잡았다.

대통령은 111명의 국회의원중 한명을 대통령으로 뽑고 국가를 대표한 외교에만 집중하는데 40세 여성이 대통령이란다.

국회의원이나 장관도 젊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30대의 장관도 몇 명이 있다고 하니 젊은 나라는 젊은나라다.

이민도 쉬워서 인터넷으로 심사하여 이민자도 뽑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젊은친구들은 환영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관광을 책임져준 가이드도 젊은 친구인데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데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대학원을 이곳에 진학했다고 한다. 대학원을 마치고 이곳에서 직장을 구해 눌러 살 예정이란다.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보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제도가 잘된 북유럽국가들... 세금은 많이 내지만 혜택은 모두 돌아오니 불만이 없는 나라들이다.

에스토니아를 떠나 러시아 성페데르부르크로 향했다.

세페데르부르크는 옛지명이 레인그라드이다.

공산당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레닌의 동상도 무너지더니 그의 지명도 사라졌다.

러시아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한참을 지체했다.

수속이 그렇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게 이곳의 문제라고 한다. 어느때는 5시간을 국경에서 소비한적도 있단다.

그래서 아예 도시락을 준비해서 버스에서 먹도록 조치를 했는데 마침 우리팀은 성수기를 지나서인지 그래도 한시간으로 수속이 끝났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이곳까지 버스로 6시간정도 달려온 것 같다.

이번여행의 마지막 호텔 상트페데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제2의 도시 과거 페르스부르크에서 페트로그라드로 다시 레린그라드로 불리우다

1991년 상트페데르부르크로 주민투표에서 결정되어 부르기로 했단다.

과거 200년동안 러시아의 수도로서 문화를 이끌던 예술도시로 성장했다.

옛 중세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관광지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유지되고 있다.

특히 겨울궁전, 여름궁전, 성이삭성당, 넵스키 대로, 러시아 미술관,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그리스도 부활성당이 볼만하다.

6-7월에는 백야현상이 나타나 밤11시에도 해가 지지않아 환하단다.

우리가 간 9월에는 6시가 넘어서서 땅거미가 내려앉아 컴컴하다. 러시아 국경에서 시간이 많이 걸릴것으로 예상해서

도시락을 준비했기 때문에 호텔방에서 가져온 김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날씨가 싸늘한 기운이 돌지만 너무 맑고 청명하다.

바람도 잔잔하고 아침해가 동녘하늘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며 상트페데르부르크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네바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필란드만과 이어진 네바강은 넓고 깊은 것 같았다.

한강만큼 넓고 큰강은 양쪽의 중세풍의 건물들로 가득차있는 문화재의 도시답다.

날씨가 약간 싸늘한 느낌이 있지만 그런대로 산책하는데는 별 지장없는 날씨다.

일부 강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탈수있도록 서울 한강처럼 도로가 잘 되어있다.

강 바로 건너편에 왕궁처럼 보이는 옛궁이 보인다. 여름궁전 아니면 겨울 궁전일 것이다.

여름궁전은 페트르대제의 여름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한 페트로 으보레츠는 1704년 페트르 대제가

1709 스웨덴과의 플바타 전투에서 승리후 이궁전을 지었으며 러시아의 황제들과 귀족들이 여름을 지내기 위한 별궁으로 지어졌다.

몇백년된 나무숲과 분수대가 바다길로 이어져 있는 이궁전은 정말 러시아의 대제국의 면모를 볼수있는 곳으로 생각된다.

네데란드식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공원은 윗공원과 아랫공원으로 나뉘며 총면적은 1000헤타르에 달한다.

144개분수와 7개의 작은 정원으로 이루어져있다.

각 분수는 전기식이 아니라 자연의 수압으로 작동되게 만들어 멀리있는 물을 끌어 수로를 통해 들어와 바다로 흘러간다.

공기좋은 몇백년된 나무숲사이로 산책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침 날씨도 너무좋아 높은 가을하늘과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숲속의 산책이 과연 여름궁전으로 면모를 들여다 볼수있었다.

겨울궁전은 로노프 왕조때 캐서린 대제가 만든 겨울궁전이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있다.

소장품은 약 230만점이라고 하는데 다보려면 몇일을 다녀야 다 볼수있다.

모네,피사로,밀레,르누와르를 비롯한 인상파 걸작이 포함되어있다.

시간관계상 일부 대표작품들만 골라서 현지가이드와 함께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걸작의 화가들의 수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겨울궁전은 그야말로 보물의 보고로 누가 와도 최고의 박물관임에 틀림없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프랑스의 루브루박물관이나 대영제국의 박물관 처럼 어디서 훔쳐오거나 빼어온 물건들이 아니라

모두 사들인 것이거나 선물받은 물건들로 가득찬 것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정직한 물건들의 박물관이라 할수있다.

러시아의 2월 혁명이후 겨울궁전은 러시아 임시정부청사로 쓰였으며 볼세비키 정권의 겨울궁전 급습은 시월혁명의 발단이 되도 했다.

넵스키대로는 상드페데르부르크의 중심이 되는 메인대로로써 궁전 광장에서 시작하여 안렉산드르 넵스키 성당까지 연결되는 최대의 번화거리이다.

이도시는 정말 매력의 도시로 생각된다.

중세풍의 건물들로 가득찬 거리는 파리의 샹들리제에 못지않은 관광지로 생각되었다.

허허벌판이던 습지대가 황제의 욕망하나로 이런 멋진 도시가 만들어 지다니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도시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인기거리를 반영하듯 백화점,극장,레스트랑, 호텔등 길거리의 예술가들과 화가등 다양한 문화인들을 만나볼수있다.

25명으로 구성된 여행팀들...

81세의 고령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70대중반 초반이 포함된 노령의 연령층이

4명정도 되는 것 같고 나같은 경우는 보통의 나이대로 보인다.

부부동반도 5쌍정도, 중년여자친구들끼리 온팀이 있고 젊은 아들과 딸이 엄마를 모시고 와서 여행을 하는등 다양한 층이 구성원이다.

비행기를 타기전에 내가 81세된 최고령의 아저씨에게 우리들에게 여행온 소감을 한마디 부탁했다.

그분의 말씀은 본인이 아침마다 빠른걸음 운동,전에는 조깅을 10킬로씩하다가 6킬로로 줄였는데 항상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현재 주어진 건강과 행복을 지키게 해주어 감사하다. 모든 만사에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게 해달라 부처님께 기도하며 산다고 한다.

그분의 말씀에 동감한다. 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지금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는게 그분의 건강비결인 것이다.

81세에 그 힘든 5000킬로의 여행을 할수있던 원동력은 규칙적인 운동과 긍정적 사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