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년도: 1995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1995년 여름 피서지에서 생긴일 best5
뜨꺼운 여름 콤퓨터앞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인것
같읍니다. 여름철의 특징은 더운것에 있지만 그 더위를 피해서 어디론가
떠나는게 우리 사람들의 연례행사인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여가활동이 매우 여유들이 있어 누구나 할것없이 바다
로 계곡으로 나가는 것 같고 이제는 해외에도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작년에는 서울집에서만 휴가를 보낸적이 있읍니다. 매년 나가서 차
속에서 고생하고 북적거리는 피서객틈에 끼어 쓰레기와 함께 지내는것보다
차라리 집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집사람이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길래 나도 쉽게 동의를 하고 서울에서만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한번 나가보자는 생각에 고향에 들릴겸 서해안 만리포 근
처의 조용한 해변가를 찾아 가보기로 했읍니다. 송죽마을이란 곳인데
다른이름으로는 백리포란 곳입니다. 만리포에서 3키로미터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에서 3일밤을 지내면서 생긴일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까 합니다.
BEST1: 술취한 취객과의 첫번째 만남
해변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식사도 일찌감치 끝내고 쉬고 있
을 때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 관광버스 몇대의 단체 야영객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조용하던 해변가는 시끌벅적 해졌고 내가 쳤던 텐트주위에
그사람들 일행의 차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낮잠이나 자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조금있다가는 자기들끼리 밥 짓는 소리와 그들끼리의 대화가 계속들렸왔읍
니다. 대부분의 40-50대 어른들의 소리들이었습니다.
"라면이 최고의 음식이여, 이렇게 좋은 음식이 또 어디있어"
"본래 여기가 우리자리인데 누가와서 먼저 자리잡었구먼"
"술이나 실컷 먹고 밤새놀라고 온거니게 마시자고"
바로앞에서 떠드는소리와 우리를 지칭한 자리차지를 얘기하는데 잠이 올
리없었습니다.
그래서 텐트앞에 나와 앉아 그들이 술타령 밥타령 하는걸 보고있었습니다.
50대정도의 술취한 일행중 한사람이 낮선얼굴을 한 나에게 접근해왔읍니
다. 혀는 꼬부라져 있었고 휭설 수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서 왔어?"
"우리는 천주교 신자들여, 천주교 신자들은 x판이지"
"술 실컷마시고 개고기 먹고 x판이지뭐"
"술이나 있으면 좀 줘?"
처음부터 반말로 시작해서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술을 달라고
하는데서는 말을 안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저씨! 여기는 아저씨 혼자놀러온 거 아닙니다. 딴사람들 입장을 생각하
며 얘기를 하셔야지요"
나의 대답에 술주정꾼들의 특징의 시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이 이사람이 나에게 시비거네"
"이사람이 천주교신자들 술먹는거 개고기먹는거 뭐라고 하네"
"안주나 하나 있으면 얻어먹으려 하는데 안주하나 안까운가 보네"
그때 부인이 �아왔습니다.
얘들을 잠깐보니 중학생인것 같은데 무척 늙어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짓하나로 안주 비숫한것 있으면 무조건 하나 주라는 표정이었읍
니다. 나는 얼른 눈치를 알아채고 오징어 먹다만 것 하나 집어주었습니다.
역시 그부인의 눈짓의 효과는 바로 나타나 몇마디 휭설수설하고는 가버렸
읍니다. 술먹는 남편의 심리를 완전히 아는 그녀는 남편을 어떻게 조종
하며 살아야 하는 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저녁은 피곤한 나머지 옆에서 떠드는 소리에 상관없이
잠이 들었읍니다. 잠이 깬건 이른 새벽 또 그 술주정꾼의 소리 때문이
었습니다.
"우리 마누라 어디갔어? 내텐트에도 없고 어디로 도망갔어"
그리고 이텐트 저텐트를 후레쉬로 들여다 보며 우리마누라 어디갔느냐는
것이었읍니다. 그부인은 민박을 하는 일행의 팀에서 나중에 왔고 그때
그는 이미 밤새 술에 취에 남의 텐트에 골아 떨어져 있었습니다.
몇번만난 그부인의 얼굴에서 무언가 깊은 시름을 느낄수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침을 해먹고 텐트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BEST2: 백사장에 빠진차를 빼내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젊은이
그 다음날 아침 산책겸해서 백사장을 돌아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 해변가이고 마찬가지로 조심할것은 모래많은 곳에서 차를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백사장 끝나는 지점까지 들어왔던 승용차는 완전히 앞바퀴가 들어가서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또 나오려 하고 하다 승용차는 계속 모래흙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승용차 앞부분이 완전히 땅에 잠길 정도로 들어가 있었읍
니다. 아마도 어제 저녁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가려 하다 날이 새버린
모양같았습니다.
주위에 어른 3명은 마대포대를 써야한다 통나무 몇개를 집어 �넣어야 한다
큰차를 불러서 끌어야 한다 포크레인을 불러야한다는등의 조언을 계속하고
승용차 주인인 뜻한 젊은 친구는 온몸이 땀으로 목욕한채 난감해 가며 삽
자루를 들고 또 모래흙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위을 돌아보니 해변가에 남자 중학생 20여명이 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불렀읍니다. 집합하고 소리를 지렀죠.
그리고 아침운동 한번하자고 하며 저기 빠진차를 한번 꺼내보자고 했읍니
다. 덩치큰녀석들을 골라 나는 그들을 승용차 옆에서 모두 붙들고 하나둘
셋에 모두 들면서 밀것을 지시하였읍니다. 내가 가장 가운데 붙어 내 구
령에 맞쳐승용차를 들면서 밀었읍니다. 한순간에 승용차는 땅밖으로 나
오고 주위에 있던 어른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렇게 쉬운걸 못했구먼"
"사람의 힘이 그렇게 힘세줄 몰라구먼"
승용차 주인인 젊은 양반은 고마워 어쩔줄 모르고 나는 중학생들에게 수고
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저어, 감사 합니다. 담배값이라도 얼마 안되지만..."
하면서 2만원을 주려고 저에게 오고있었읍니다만 나는 거절하고 얼른
그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역시 기분이 좋은 하루였읍니다. 그리고 여러사람의 지헤와 힘은 무서운
것이란걸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좋은일 한다는건 역시 천금을 받는다는 것보다 보람있는 일이란걸 느꼈
읍니다.
BEST3: 주운 물건을 돌려주기 아까워 머뭇거리는 꼬마
나는 어느 한친구와 그곳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친구는 하루늣게 도착해서 내옆에 텐트를 치고 두가족이 이웃이 되어 지
내게 되었읍니다. 그친구의 막내아들는 아직 국민학교 들어가기전인 일
곱살짜리로 개구쟁이었읍니다.
오자마자 바다로 가겠다고 서둘러 댓읍니다. 그러나 튜브를 깜박 잊고 와
우리집 딸애 튜브를 가지고 바다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녁무렵 들어올때 튜브하나를 주었다면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백사장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튜브였던 모양이었습니다.
계속 가지고 자랑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아저씨, 나 튜브 좋은거 생겼다. 바다에 또 나가고 싶다"
튜브를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놀았습니다.
한참 튜브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건너편에 있는 텐트 어떤 아줌마
한사람이 그튜브를 보고 그꼬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얘, 그튜브 네거니? 우리집애 튜브 잊어먹었는데..."
갑자기 물어온 질문에 그녀석은 순간적으로 대답을 머믓거렸습니다.
그녀석의 머리속에 갑자기 양심의 판단력이 약해진것 같았습니다.
"예. 저~어, 내~ 건데~요"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녀석이 거짓말 하는것을 용납할수 없었습니다.
"아줌마, 저녀석이 바다에서 놀다가 돌아다니는 거 가지고 들어온 모양
에요."
"고맙다, 꼬마야"
하며 아줌마는 튜브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한참 튜브가 하나 생겨 기분이 들떠있던 그녀석은 그만 플이 죽어 할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딸래미 튜브를 주고 그것 가지고 돌아갈때까지 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짓 말 해서 얻은 물건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습니다.
남의 물건은 돌려주는게 원칙이란걸 그녀석에게 알게 해준게 더 기분이 좋
았습니다.
BEST4: 밤새 고스톱을 치는 아저씨들.
한국의 성인 놀이문화는 역시 고스톱이 최고였습니다.
성인 셋이상만 있으면 밤새는 줄도 모르고 쓰리고를 외쳐댔습니다.
그런데 고스톱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3일밤을 보내면서 첫날밤은 천주교신자들의 술먹는 소리와 함게 잠을 잣고
둘째날 밤은 자리를 옮긴게 고스톱 골신자들 옆에 있던 덕에 밤새 고스톱
점수 따지는 소리와 함께 잠을 잣습니다.
"야! 너 피박에 쓰리고야!"
"임마! 왜 칠점인데 팔점이라고 그래 이 도독놈아!"
"꽝값이 어디로 갔어! 꽝값 줘야지"
"썰싸야 썰싸! 얼시구 그건 내거야!"
그사람들은 다음날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이 왔는데 역시 저녁밥 먹고 고스
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잠자기는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밖에 모기향을 두개 세개 피워놓고 밖에 앉아 있을 생각으로 있었는데
이사람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고스톱을 치는지 안치는지 모를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저 그들이 화투장들이 왔다갔다 하니까 고스톱 친다고 하지 전날밤 사람
들과는 전연달리 조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잠이나 자야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너무 조용하니 오히려 잠이 안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역시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도 여러 종류라는걸 느꼈습니다.
BEST5: 오토바이 굴러가는 소리로 말이 많던 중년여인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보면 많은 이웃의 모습을 볼수 있는 점이 좋은점
인것 같읍니다. 그들의 살아가는 한단면을 보는것 같아 재미있다고 느꼈
읍니다. 내주위에 있던 어떤 텐트 중년아줌마는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안
았읍니다. 같이온 동료들과 또 얘들한데 무슨얘기든 어디에서 얘깃거리를
찾아내는지 의심스럴정도로 게속 입을 움직였습니다.
태생이 부지런도 한지 손도 가만있지를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계속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라면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불고기를 구워대고 감자를 찌고 튀김을 만들
고 만들면서 계속 이야기하는걸 보고 나는 집사람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도 저여자 하는걸 보고 배워야혀.적어도 여자라면 저렇게 식구들에
게 봉사를 해야지."
그 한마디가 나에게 더큰 짐이 몰려올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신 말 잘했어요, 이런데 오면 남자들이 다하는 거애요. 이제부터 설
거지는 당신 책임이야!"
그래서 그때부터 설거지를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여자말 한마디에 꼼짝못하는 공처가 이므로...
하여튼 그여자는 다음날 점심때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완전
히 목이 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변함없이 말을 쉬지않고 해댔습니다.
"아저씨, 이거 남은 상추인데 잡수세요, 김도 잡수시고요, 양파도 남았
네요, 트리오도 조금 남았어요."
그녀는 말만 많은줄 알았더니 인정도 많았습니다.
누가 남편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녀와 헤어졌읍니다. 그만큼 그녀가 너
무 크게 보였기에 남편을 볼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정에는 그녀가 큰 대들보처럼 버티고 있는것 같아 그녀의 남편이
부러웠습니다.
봉사와 희생으로 넘치고 명랑함으로 넘치는 여성이여....
왜 제게는 그런 행운이 없고 설거지 피박만 쓰냐구유~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구만유~
오래만에 바다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로 돌아왔읍니다.
고향친지들도 만나고 서울 콘크리트 바닥으로 돌아온 지금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는 맑은
상태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사람들은 여행이 필요한 것 같읍니다. 똑같은 생활에서 벗
어나 새로운 생활을 접해보는 경험은 하는게 생활의 재충전하는 모습이
라고 할까요?
즐거운 여름휴가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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