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년도: 1995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산고개에서 만난 40대여인
산을 좋아하는 나는 시간이 있을때마다 산을 찾곤하는데 지난 일요일에도
집사람을 이끌고 우면산으로 갔다.
우리동네의 좋은점은 산을 끼고 있는 주택가 이기 때문에 공기도 좋고 자
연을 벗삼아 산보하기도 좋다고 할수 있다.
단독주택만 있던 우면동이
요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시끌벅적했졌는데 좋은점
도 있지만 나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좋은점을 얘기한다면 각종가게들이 많이 들어서 차타고 나갈 필요가
없고 버스가 자주 다니고 있어 대중교통수단이 편리해졌다
나쁜점은 사람이 많아지고 차가 많아지니 교통이 복잡하고 쓰레기가 많아
져 이곳 저곳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약수터에 올라가 물을 뜨려면 이제는
한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물한통 길러 내려올수 있는점이 나쁘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나쁜점이 많다.
아파트단지가 생기기전에 나는 퇴근시에 동네입구에 들어서면서 차문을 열
고 공해없는 공기를 실컷 마시려고 했는데 이제는 집에 들어설때까지 차문
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이 많아지고 차가 많아지면서 우리동네
공기도 옛이야기로 된 것이다.
조그만 고개를 하나두고 옆동네가 있는데 이곳도 우리동네와 마찬가지로
서울시로 편입되기전에 경기도의 한 시골 부락이었는데 아직도 그때의 옛
날 동네이름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암산마을,형촌마을, 성촌 마을 등
조그만 산등성이를 경계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그중에서 내가사는 마을만 개발이 되어 큰 아파트단지가 생겼다.
그날도 우리부부는 마을 고개넘어가는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데 멀리서 큰 수박한통을 들고 끙끙대며 올라오는 한 중년 부인을 보게
되었다. 고개를 하나 넘어 가지고 가기에는 큰 수박이었는데 나는 습관대
로 가까이 오자 인사를 대신에 한마디 했다.
[나는 산에서 초면에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다. 특히
동네산에서 만은... 누구에게나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한다]
"수박이 너무큰데 반만 드시고 쉬었다 가시지요"
내가 던진 한마디에 환한 미소를 띄고 답한다.
"그렇게 하지요, 어디서 많이 뵌분 같아요"
"당연하겠지요.이웃동네 사람 아닌감유"
그렇게 하면서 우리부부와 이야기를 한 낮선 중년부인의 이야기 다섯을 골
라볼까 한다.
하나> 동네이야기
수박을 한통 사가지고 가는 이유는 동네에 시장이 없다.
차를 가지고 오는 채소장사를 만나야 사는데 언제올지도 모르고 해서 고개
를 넘어 우리동네로 넘어왔댄다.
조그만 고개하나 차이지만 우리동네와 자기동네 차이는 너무나 많댄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마을과 그동네와는 별차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한두가지가 달라진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자기는 자주 이동네로
고개하나 넘어 시장도 보러오고 변해가는 동네 모습도 보게된다.
없었던 술집이 생기고 피자집등 수없는 먹걸이집 노래방등 없는게 없는
도시가 갖춰야할건 다있는 동네가 되버렸다.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우
리가 사는 주택단지까지 상가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내가아는 우리동네 토박이들의 이름을 쭉 얘기하니 모두 아는 사람들이
다. 전에 시골이었을때 몇가구 없었을 테니 당연히 동네사람들이다.
이제는 거의가 외지인 들이 마을 주인행세를 하고 있으니 변화의 모습을
너무나 실감한댄다.
처음 이십년전에 시집왔을때는 멀지않은 말죽거리에서 버스가 2시간에
한번씩있었고 조금씩 앞당켜져 이제는 10분에 한대씩 시내가는 버스가 생
켜 좋은데 그래도 옛날의 시골냄새 물씬나던 그때가 좋았다.
우리동네에도 300여 가구중 토박이 가구가 10여가구 되는데 그분들이주축
이되어 동네 침목회를 구성했는데 그틈에 나도 끼어 친목회 막내노릇을 단
단히 하고있다. 전부 환갑전후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부름꾼 총무노릇을 한다.
그쪽 동네에도 토박이 분들이 그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동네처럼 그런 친목회는 없는 모양이고 우리가 하는 친목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지금 살고있는 분들과는 이웃사촌처럼
옛날과 같이 지내니 동네소식을 잘안다....
둘> 자식이야기
그중년부인의 자식은 딸만 셋이다.
큰딸이 대학생 둘째딸이 고등학생 셋째딸이 중학생인데 왜 셋이나 낳았
으냐는 질문에 남편이 장남인데다 아들하나 낳아보려고 더 낳았댄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 더 낳은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딸셋중에서 가장 예
쁘고 아빠를 사랑하고 엄마를 좋아하는 자식은 막내딸이다.
아빠도 막내를 예뻐하는데 자기가 보아도 예쁜짓을 많이 한다. 아빠가
들어오면 서비스가 만점이다. 어깨가 아프냐 주물러주고 다리가 아프
지 않으냐 주물러주는건 막내란다. 첫째딸은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인지
자기가 필요한 말만 하고 만다. 학교갔다 돌아오면 자기방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아마도 둘째딸은 그 중간 성격인 모양이다. 크게 자랑도 없
는걸 보니...
그래서 딸들만 셋을 낳은걸 후회는 안한다.
아들이 있다고 같이사는 시대는 우리세대에서는 없을 것이므로...
앞으로 또 자식들 덕을 보며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하므로 이제 노
후에 두사람이 마음 편한히만 살면 되겠댄다.
셋> 집이야기
자기가 사는집은 지은지 20년 이상된 집으로 아마도 그동네에서 가장 오
래된 집이다.
자연부락이 마을이 되었으므로 대지는 100여평이 되어 채소도 가꾸고 과
일나무도 심어 좋은점도 있지만 나쁜점도 있다.
우선은 방이 셋이라 큰방하나는 부부,작은방둘은 딸셋이 쓰고 고등학생
인 둘째딸이 독방, 대학생과 중학생딸이 같이쓰는데 우선 대학생 딸이 가
장 큰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대학가기전까지는 독방차지였는데 이제 다
커서 중학생 동생과 같이 쓰려니 한두가지가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매
일 조르는 것이 이사가자는 것인데 남편은 결사반대이다.
이사가면 큰일나는줄 알고 그동네를 안떠나려 한다. 떠나더래도 우리동네
즉 옆동네라면 몰라도 멀리는 안가려해서 집을 내놓았는데 사러오는 사람
이 없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다 보니 주택경기가 없는데 삼풍이 무
너진뒤로 변화의 조짐이 있다. 언제무너질지 모르는 아파트보다 주택이
좋겠다고 사람들이 생켜나기 때문에 최근에 보러오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동네에 방네개짜리 집이나 빌라를 살까하는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먹을 수록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곳을 떠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새
삼 느꼈다. 젊은사람들은 자꾸만 나가려 하고 나이먹은 사람들은 옛날로
돌아가거나 그대로 있고 싶은 심리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넷> 이웃이야기
문민정부들어서 첫서울시장이 그동네 사람인데 임명된지 일주일만에 사퇴
하고 말았다. 임명되자말자 신문에 그집의 원두막있고 잔디밭있는 사진
이 커더랗게 나와버렸다. 말그대로 서울시장이란 사람이 용도 변경에 앞
장섰으니 언론에서 그렇게 세게 맞을 수밖에...
그러나 그부인의 얘기는 그분은 사실 조금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용도변경한 사람은 전에 살던사람이다.
그분은 그런 집을 사서 들어온죄뿐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원두막 하나만
그분이 이사와 지었다는 얘기다. 하여튼 변호사하는 법을 잘알던사람이
불법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았다는게 더 큰죄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두 원상복구하여 놓고 아직도 그집에 살고 있지만 동네사람과는
친하게 안지낸다. 만약에 그분이 이사오자마자부터 동네사람과 친하게 지
내고 동네를 위해서 일을 했다면 동네사람들이 먼저 변명을 해주었겠지만
그렇치 못한게 잘못인것 같다.
나도 산에서 가끔 얼굴을 본적이 있다.
그동네에서 오래된 사람들중에 옛날 부자였던 사람은 변변치 못하고 좀 약
삭빠르게 놀던사람들은 지금 떵떵거리고 산다. C부자로 통하던 사람은
자식들이 이사업합네 저사업합네 다없애고 남은것은 연립주택 하나...역시
부자3대못간다는 옛말이 틀린게 없다. 그사람은 우리동네에서 내가 잘아
는 술좋아하는 양반인데...
지금 이쪽저쪽에 큰빌딩을 가지고 있는양반은 옛날에 머슴살이 하던 사람
이었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열심히 자산을 늘려 이제는 그랜저타고 다니
는 사장님이시다.
다섯> 남편이야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남편의 직업쪽으로 왔다.
그런분이라면 순진한 월급쟁이인줄 알았는데 부동산 소개업을 한댄다.
"오래동안 한자리에서 오래동안 했는데 사람이 너무 순진하고 순박해
서 돈을 많이 못벌어요. 그런사업하려면 더러는 없는 얘기도 하고 사
람을 설득해서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야 하는데 그대로 거짓말은
절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어느부동산이냐 묻자.동네에서 얼마 안떨어진 부동산으로 우리집
방을 내놓기위해 가본 부동산이었다.
그리고 한말
"사실은 남편이름이 XXX씨에요"
조금은 놀라웠다. 왜냐면 그사람은 이번에 구의원에 나와 일등으로 당
선된 양반이기 때문이다.
우리부부도 그사람을 찍어줬는데 고등학교 학력을 속이지않고 그대로 쓴
점하고 이동네 토박이란 점이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이다.
딴사람들은 웬 대학원을 그렇게 많이도 다녔는지...
"우리가 사람을 잘못보지는 않았군요. 일류대학나온 사람보다 정말 주민
들의 어려움을 대변할 사람은 진실이 담긴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지막>
어느덧 같이 얘기한게 한시간이 흘러갔는지 산등성이에서 멋적게 몇 년지
기처럼 이야기하면서 나이도 물어보았는데 나하고 동갑네기였습니다.
여자나이 사십중반이면 자식을 다키운 어른이시고 남자나이 사십중반이
면 아직도 국민학교 다니는 어린녀석들을 돌봐야하는 어린청년이란 것도
다시한번 깨닫으면서 사람사는 것은 어느 누구나 똑같다는 걸 느꼈읍니
다. 단지 차이는 본인이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면
서 최선을 다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하면서도 사람들과 잘 통하는 중년의 동갑내기 여인을 만나보
면서 나의 시골국민학교와 중학교 여자동창들도 저렇게 �늙어갔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한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헤어지며 무거운 수박한통 조금 들어주면서 다음에는 제대로 인사하고
우리부부와 지낼것을 약속했습니다.
읽어주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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