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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기

구마모토성을 둘러보다

구마모토 성을 둘러보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3대성중에 아나다.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이다. 지난 여행에서 두성을 다보았고 히메지성까지 보았으니 구마모토성을 가보고 싶었다. 일본의 역사가 있는 곳이고 항상 한반도 대륙으로 진출을 노렸던 본거지로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마모토성은 버스센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구마모토역에서는 한참을 가야하지만... 입장료는 1000엔인데 산규패스를 가지면 반액으로 할인해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 입구에서 천수각까지 들어가면서 그 구조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느성보다 5, 6중 방어진 구축...난공불락의 구마모토성(熊本城)이다. 1단계를 들어왔더라도 제 2, 제3의 방어선이 구축되어 도저히 침입에 성공할 수 없는 그런 구조이다. 고향 해미읍성과 함께 한국의 성들을 생각해보았다. 너무 단순한 구조의 성구조가 강력한 군사력의 침략을 이겨낼 수 없다. 임진왜란때 우리가 일본군에게 당한 것은 그들이 우리의 성구조가 너무 단순한 걸 알고 우습게 알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으로 올라가면서 상대를 위압하고 제압해버리는 공격의 기운이 서려있다. 수직으로 뻗은 날카로운 직선들은 다분히 전투적이다. 일본의 성주위에 강같이 만든 호수는 조금뿐이 없는 것 같지만 이곳의 특징은 그 성벽을 넘고 오르면 복도가 연이어 있고 복도 둘레엔 또 성벽, 또 성벽이다. 세이난(西南)전쟁 때 성 공략에 실패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우리는 관군에게 진 것이 아니고 세이쇼공(천수각 즉 구마모토성)에게 졌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토요토미 사후(死後) 전국은 이시다 마쓰나리파와 도쿠가와 이에야스파로 양분되고 두 세력은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일대회전을 벌이게 된다. 도쿠가와 편에 섰던 가토는 눈부신 전공을 세우게 되고 그 공로로 이 일대 영지(領地)를 하사 받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든든한 후광을 업고 가토는 20만섬 규모 재정을 50만섬 규모로 키우며 영지(領地)를 확장한다. 일본여행을 하면서 큰 성은 다 둘러보았다. 가장 큰규모의 성으로 보였던 것은 오사카성이고.... 주위 경관과 어울려 아름답게 보이는 성은 히메지성이었던 것 같다. 구마모토성은 전에도 얘기 했지만 군사적 요새로 적을 막기위한 설계로는 최고의 성인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꼼꼼함 성격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의 전체 면적은 98만여 ㎡ . 5.3km 주위를 도는데 1시간 쯤 걸린다. 49개의 망루와 18개의 망루문, 29개의 성문이 있으니 그 위용을 짐작할만하다. 400년이 지난 목조 천수각은 아직도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목조건물로 지금은 콘크리트로 복원되어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훼손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에 실패했다. 일본의 문화재들이 각 지역마다 잘 보존되고 복원되어 있는 것 같다. 은행나무가 많이 있는데 이는 성안에 비상식량용으로 심었다고 한다. 은행은 저장하기 좋고 영양도 좋아 군사용 비상식량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구마모토성을 은행나무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천하통일이 안되고 내전이 계속되는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우리의 침략도 없었겠다 생각하기도 하며 성을 둘러보았다. 통일이 되기전까지 이렇게 크고 견고한 성을 만들며 군사력을 키우는데 온전력을 다하였던 일본역사이었고 통일이 된후에 한반도 침략을 하게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마모토성엔 가토의 조선과 관련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가토는 임란 때 제일먼저 한양에 입성, 선조의 왕자들을 포로로 잡았던 인물이다.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 약해 그저 당하기만 했던 뼈아픈 침략의 역사와 나라를잃을 수밖에 없는 그때가 너무나 가슴 아프다. 좀더 빨리 나라를 개방해 군사기술을 키웠다면 이들도 우릴 얕잡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임란때 수많은 건축기술자, 도자기 기술자들을 포로로 데려와 우수한 한국의 문화와 기술을 배워 자신들의 것으로 키웠다고 한다. 구마모토성 아래 울산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조선의 포로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전한다. 이제 지난 역사이고 우리 선조들의 어리석음의 결과로 아픈역사에 매달리는 현실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은 현실에서 비추는 밝은 빛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만남으로 희망의 불을 다시 지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빛이 밝은 곳에 가서 그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자름을 호소하고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일본 여행을 자꾸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이다. 구마모토 성 주차장에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들어왔다. 패키지 여행객들로 구마모토성 관광은 필수코스다. 이곳에 오는 우리관광객들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들에게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고 온몸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쓰라린 아픔도 서로 화해하고 달래주면 얼마든지 달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내 가슴 가까이 일본의 좋은 것들을 읽어보고 싶다. 일본의 모습에서 달콤한 것들은 내 것으로 만들고 절대로 약한 우리것에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 조바심하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도 일본 만큼 세계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2009. 05. 13 수요일 천안/영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