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이야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나보다 3살이 더 많은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향년 75세, 적어도 10년은 더 사셔야 남자 평균수명인데 일찍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외갓집에 놀러가곤했는데 그곳에 가면 우리 또래의 외삼촌이 계셨다.
같이 놀고 같이 자면서 외갓집에서 여름방학이면 같이 지내곤 했는데... 어릴때 추억이 많았던 외삼촌이 이제는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니... 조그만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난번 추석때 샛째이모댁에 갔을때 외삼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렇게 심각한줄은 몰랐었다.
우리 4형제와는 어릴적 같이 지낸 추억이 많은 외삼촌이고 커서는 어머님이 아끼는 하나뿐이 없는 남동생이라 우리집에도 자주 와서 세상 삶을 같이 동행하는 동반자였다.
초등학교 시절 머리가 좋아 상급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외할아버지는 거절하셨다.
거절한 이유는 하나뿐이 아들을 버린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가려면 객지 생활을 해야하고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부모를 무시한다는 이유였다.
물론 가정형편도 어려웠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수는 있었지만 외할아버지의 확고한 신념은 상급학교 진학을 가로막는 첫번째 이유였다.
그뒤로 뭔가를 하려고 서울에 있는 우리집에서도 잠시 머물며 운전을 배우기도 하였고 시골로 내려가셔 과수원도 빌려 과수농사, 고구마농사, 조경사업까지 별의별 일을 하면서 성공을 기대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로 담배를 많이 피우셨던 모양이다.
본래 술은 체질에 안맞아 드시지 못했는데 담배는 줄담배로 유일한 피신처였던 것 같다.
페암과 간으로 전이되 간암까지 나중에 퍼져 금방 세상과 이별을 하신 것 같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큰형님에게서 연락을 받고 우리 4형제는 서산의 시민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이종사촌 규성이와 몇몇 외가 친척을 만나고 올라왔다.
몇주 후면 어머니 기일이다.
작년인가 외삼촌은 큰누님 산소에 가보고 싶고 나무를 정리한다며 덕산 산소에 같이 동행했었다.
그게 마지막 외삼촌과 같이한 마지막 시간이다.
외삼촌이 정리해준 어머님의 산소, 땅속에 계신 어머님도 남동생의 손길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에서 볼줄은 몰랐을 것이라며 슬퍼하실 것 같다.
이제 경쟁이 없는 세상, 모든것을 내려놓았으니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다.
외삼촌,  삼가 조릐를 표하고 영면하시길 기도합니다.

재작년 어머님 기일 1주년에 우리 6남매와 함께한 외삼촌... 그때는 그렇게 건강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