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이로 68세,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12일 새벽 혈액암으로 저세상으로 갔다.
큰형님에게서 처음 소식을 받았을때 소리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담담했는데 이번에는 왜그리도 슬픔이 몰려오는지 한숨만 푹푹 나왔다.
6남매중 큰딸, 위쪽으로 오빠 4명이 버티고 있고 딸로 아래 둘, 맏딸로 태어나 부모님이 가장 많이 의지했던 딸이다.
부모님이 노후 20년 큰딸이 살고 있는 부천에서 살았을 정도로 의지를 했던 딸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4년여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어머님께 효도하더니 하늘나라 곁으로 떠났다.
어머님이 93세로 떠날때까지 사시는 아파트에 하루에 두번씩 왕래하며 보살펴 드리던 동생이었다.
오빠들이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시자 했지만 끝까지 반대하며 사시던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효녀딸, 심청이 같던 동생이 어머님이 가신지 몇년도 안되었는데 그 곁으로 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혈액암이 찾아와 동생을 빨리 헤어지게 만들었다.
어제 발인하는날 아침 일찍 올라가 경기도 화성 추모공원까지 따라가 배웅을 했다.
카톨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동생은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는데 어느순간 성당에 다니더니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어있었다.
어머님 만나러 부천에 갈때 만날때마다 성당 봉사활동 나간다고 하더니 정말 봉사활동을 많이 한 것 같다.
추모공원 가기전 성당에서 추모미사가 있었는데 200명이 넘는 성당 신자들이 나와 미사를 참여했다.
큰딸이 삼성전자에 다녀 장례절차와 비용은 삼성전자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며 역시 대기업의 사원의 복지혜택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딸 셋중 둘은 시집을 가고 막내딸만 남았는데 아쉽다면 막내딸까지 보내고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동생은 떠났다.
성당의 신부님 말씀이 생각난다.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더 좋게 후손들이 잘되는 것을 내려다 보길 원하고 기도한다.
그 많은 성당교우, 우리 형제들 남겨놓고 먼저 떠난 동생, 저세상에서 이제 아프지 말고 편안히 내려다 보고 있거라.
우리형제들도 머지 않아 그세상에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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