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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천안생활

소주 종이컵 한잔에...

      골프 연습장 휴게실... 가끔은 소주 파티가 열린다. 술을 좋아하는 몇사람이 모이다 보면 소주 몇병에 간단한 안주를 사와 한잔씩 한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마지못해 한잔 정도 받아먹는 정도로 끝나곤 하는데... 엊그제는 칠십이 되신 큰형님이 큰 종이컵으로 한잔을 주는데 그럭 저럭 소세지 안주로 다 비우고 말았다. 그날따라 산을 넘어 걸어와 차를 가지고 갈 걱정이 없던터라 종이컵 한잔의 소주를 다 먹었던 것이다. 거의 운동도 끝나가고 바로 산으로 향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속에 소주 종이컵 한잔... 사실 내주량으로는 부담이 되는 량이었다. 한시간 걸리는 산길을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한참을 가는데.. 나무들이 달려오는 것 같고... 빙글 빙글 하늘이 돌고 있다. 하늘이 나무사이로 나와 숨박꼭질 하잰다. “녀석들...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불어...” 계곡 사이에 쌓인 하얀눈 사이에 누워버렸다. 참 고요하다. 참 평화롭다. 그속에 누워있는 난... 술취한 취객... 눈속에 파뭍혀 얼어죽은 취객? 우습다. 벌건 대낮에 낮술먹고 산속의 눈계곡에 죽어버려... 종이컵 소주 한잔에??? 이참에 한번 신문에 나봐???? 아내에게 전화했다. “나...죽을 것 같다.” “뭐???? 어딘데요???” “나...죽어도 괜찮지? 먹고 살건 있잖아?” “당신 취했어?” “소주 종이컵 한잔에 나...눈속에서 죽는다.” “뭐??? 사이다 컵으로 먹었어?” “그래...먹었다. 집에 안오면 죽은줄 알어라.” “정신차려 이남자야. 그까짓 소주 한컵에...” “한시간내 집에 안들어가면 119에 연락해라” 집사람에게 겁을 주고 하늘을 보았다. 조금씩 정신이 든다. 눈속에 한참을 누워있다보니... 이불처럼 포근하다. 온하늘이 푸른색 종이로 도배한 깨끗한 방이다. 나무들이 손을 흔들고 웃고 있다. 이런 좋은 세상에 살고있는데... “아직은 죽을때가 아니지...일어나자” 집에 도착해 처벅 처벅 계단오르는 소리에... 아내가 문을 열고 기다린다. “즈쯔...소주 한컵에 케오 당한 남자... 어서 오시오“ 그날 따라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다. 살아서 돌아온 나를 기특하게 생각해준 그녀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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