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전의 편지를 보며.......
우리 4형제중 막내인 홍로(교통안전공단 교육원장)는
옛추억을 가장 많이 간직하는 동생입니다.
얼마전 휴일에 4형제가 막내녀석의 교통안전공단
사무실에 들린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시골사진이며 좋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서
가보자고 해서 형들하고 드라이브 겸해서 들렸습니다.
동생의 교육원장실에는 온통 추억의 사진들이 책상주위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행장이 되버린 고향집 옛사진이며 동네사진들...
초등학교때 동생과 내가 마당에서 찍은 사진은 옛추억과
그리움을 흑백화면처럼 눈앞에 스쳐가는 기분이었죠.
특히 인상이 남는 것은
20대 초반에 군대에 갔던
형들이 동생에게 보냈던 편지를 모두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그많던 일기장이며 편지모음을
모두 없애버렸는데 언제 그랬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막내동생은 형들이 자기에게 보낸 편지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며 틈날때마다 떠들어 본다는 말을
듣고 추억이 우리 마음에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추억은 바로 현실의 뿌리가 아닌지....
가장 많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ROTC 장교로 갔던
정이 넘치는 큰형님이었습니다.
주로 내용은 부모님 잘모시고 공부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형제들중 가장 인내력을 가진 둘째형은 귀신잡는
해병대 하사관형으로 입대하였는데....
편지 내용도 간단하였습니다.
그것도 엽서로.... 군훈련 열심히 받고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형님들 편지...내편지 모두 ...공부가
공통적인 내용이었죠.
그곳에서 모든 편지를 복사해와 가끔 그 편지들을
읽어보곤 합니다.
제가 군에 가있을때 보낸 편지 몇통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제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내용중에 중학교 다니던 막내 여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일등을 했었는데...
계속 잘하길 바란다는 내용과 모두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내용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3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던 난....
입대전까지 영어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였습니다.
특히 회화공부를 하기위해
주말이면 용산 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가까워진 미군병사 친구와 미군 숙소에도 들어가보고
미군식당에서 햄버거도 얻어먹고 신기한 경험을 하며
회화공부에 미쳤있었습니다.
도봉산 등산도 같이 간 기억도 있고....
대학교다니던 동생에게도 미군병사가 있는
그곳에 가서 영어공부를 하라고 권하는 내용이
있는걸 봅니다.
그때 당시 온통 머릿속에는 군대 제대하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민이 힘들었던 그당시 가장 쉬운길이 자동차
정비사가 미국에 받아준다는 정보를 듣고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바로 군에
입대를 했었습니다.
그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 때문에 육군 수송대에서
배치되어 고생만 실컷 하고 제대하였지요.
제대하자마자 이민간다던 내 이기적이던 내생각도
많이 바뀌어 새사람이 되어 대학 4학년에 복학했죠.
대학 졸업반이 되니
이민을 가겠다던 굳은 의지는 사라지고 생각이
현실주의자로 되버렸습니다.
빨리 대학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자로 말입니다.
그당시 공대 대학졸업생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던 터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중에 하나인
현대차에 영어실력 덕분에 가볍게 합격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졸업한 년도가 78년이니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되가는 것 같습니다.
대학졸업한지 30년이 넘어가는데...
현재는 무엇이 남아 있고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면
모든 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허무한 세월을 보내고 아무것도 남은게 없는
중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생활에 못 벗어나는
평범한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요즘입니다.
동생이 보여준 편지가 아련한 내 옛꿈을
되살려주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7. 06. 12 저녁 천안/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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