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암리 고향 시골집사진...지금은 비행장 활주로 >
추석에 생각나는 옛추억....
추석이 내일 모래...
나이가 먹으면서 명절을 맞는 기분도 달라지는것 같다.
내블로그의 글을 모두 본사람은
맨날 한이야기를 또하는 구먼 하고 말할런지 모르지만...
이왕에 열어본거 또 읽으시길 바란다.
혹~~ 새로운 내용이 있을지 모르잔여~~
그 옛날...
충청도 서해안 바닷가 시골에서 태어나
크고 자랄 때 어린시절의 추석은 찬란했다.
추석전날 보름달이 올라올즈음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향해 두팔을 벌리고
고향언덕인 단지봉에 오르곤 했다.
그때부터 난 특이한 감성적인 소년...
감정이 풍부한 사내아이였던 것 같다.
동쪽 가야산에서 떠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보며 희망을 얘기했다.
희망이라면....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이런 한적한 시골은 싫다.
갯펄 냄새나는 갯마을 고향이 왜그리도
떠나고 싶었던지 나도 모르겠다.
자고나면 먹는 살조개...조개국...사시랭이(조그만 게종류)
황발이반찬....바닷가 반찬이 싫증 나버린 것일까?
가을이면 망둥어 말리는 냄새 마당에서 진동했다.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가을이면 망둥어를
한구럭씩 잡아오면 어머님은 배를 갈라 마당에
말렸다.
겨울내내 호박이랑 찌개를 만들어 먹을 특식 반찬
겨우살이 준비였다.
<서있는 아이가 나....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사진이다. 당시 언암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사촌형 이창로 선생이 찍은 사진이다. 1956-7년도 사진>
중학교를 졸업하고
추석 보름달에 기도한 효험이 있었는지
고향을 떠날 수 있었다.
서울쪽에 있는 고교에 합격한 것이다.
아~ 서울이다.
그렇게 설레이던 서울 생활....
대학생이던 큰형님을 따라 처음 서울에 올라올때가
생각이 난다.
마장동 큰형님 자취집에서 서울에서 첫날밤을 지냈다.
한없이 언덕빼기를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판자촌 산꼭대기 집....정말로 누추한 집이었지만
서울이라는 명예로 쓰러져가는 판자집도 빛이 났다.
으리으리한 집도 많고 초라한 판자촌도 있는 빈부격차가
심한 서울이었지만 우선 서울생활이면 출세한 거야....
난....드디어 서울 사람이다.
고2때 시골집, 농사터를 정리하고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 상도동 숭실대 근처로 터전을 잡았다.
애들 교육을 위해...대담한 결단을 내린 아버지....
서울로 이사를 갈 때 외할아버지가 결사반대했다.
외손자들 거지만들려고 한다면서 큰사위의 상경을
극구 반대했다.
애들 교육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농사터가 많으니 농사나 지으며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가지마라....
교육에는 무관심이었던 외할아버지 철학...
“자식 교육시키면 부모 버린다”
당시 우등생으로 졸업했던 외삼촌을 중학교에
안보내고 농사를 짓게 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사정을 했는데도...
(아버지는 장인어른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
올라와 우리 6남매를 대학까지 모두 가르쳤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자식이 머리가 안따라와 안되는 일인데....
부모님은 그걸 해내셨다. 그 자식들도 위대하다)
<상도동 집에서 6남매 가족사진을 찍었다. 1975년도 사진...군복입은 청년이 나....>
그후....몇년후 서울에 집을 샀다고
했을때 외할아버지가 올라오셨는데....
철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다가 대문턱에 걸려
넘어지셨다.
모두 놀라 뛰쳐나왔다.
우리 형제들이 쫒아가서 일으켜 세운 기억이 난다.
그때 외할아버지 말씀....
“돈 많이 벌어 이근처 땅 더사라고 일부러 넘어졌다...
괜찮아....녀석들아”
“부자 될겨....이제 걱정 안혀...서울에서 집까지 사고...”
“다음번에 올때마다 넘어질겨...상도동을 다사라고...”
농담을 잘하시던 외할아버지...
우리 외손자들이 엄청나게 좋아했고 존경했다.
방학때면 음암 구시울 외갓집에서 살았다.
그후....이어진 복잡한 서울생활 몇십년을 보내며
다시 고향생각이 간절해졌다.
맑고 고운 고향하늘, 비린내나는 갯펄의
고향품속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즈음....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11년전 해미고향근처 예산에
있는 회사를 인수하여 내려오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도 온 것이었다.
서울에서 살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온갖 농촌생활 시험을 해보았다.
토끼, 오리, 닭 기르기...
붕어 잉어를 잡어다가 양어장에 넣어 길러보고
밭에는 고구마등 채소를 가꾸어보면서....
미래의 농촌생활을 사전 체험했다.
가을철이면 바다낚시를 즐기며 여가생활을 즐겼다.
내블로그의 예산생활을 읽어본 사람들은 감을 잡았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예산에서 보낸 7년간의 생활이다.
내 시골 생활 철학은...
시골 생활이 돈벌어 먹고 살수만 있다면
몇억을 벌고 사는 도시생활보다 훨씬 좋다.
시골에서 십만원벌이가 도시의
백만원벌이 가치가 충분히 있다.
먹고사는 것중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공기다.
세상아래 보이는 것은 맑은 시골하늘만이 아니다.
서울하늘에서도 쾌 맑은 날이 있다.
하지만 서울에는 없는 것이 많다.
아롱아롱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시냇가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자연의 소리는 시골에 많다.
내몸속에서 소화시키는 삶의 속삭임은
분명 자연의 소리를 잘 받아들인다.
서있는 자리가 아름답다고 느낌을 주는곳은
때마침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 한가운데다.
나를 격정적으로 삶의 희열을 주는 곳...
시골이다.
계절이 오는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곳에서
얼키고 엉킨 생각들이 정리되곤한다.
명절때면 시골로 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추억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추석날 되돌아본 옛추억 이야기가 시골찬가가 되버렸다.
<세상의 도시 사람들이여....
시골의 생활을 즐기면 삶이 새로워집니다.>...영로말
2007 9.22 추석을 맞아 옛생각이 나서 천안/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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