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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예산생활

아들과 공주를 다녀와서...

내아들...
대학을 간다.
공주에 있는 국립대학...공주대학교.
옛날 사범대학이 종합대로 되면서 공주대학교로 되었다.

이번에 아들은 세군데를 합격했다.
홍익대,한밭대,공주대...
전공은 모두 기계공학과...
홍익대를 안간것은 사립대라 만만치않은 등록금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한밭대로 갈까 고민도 했다.
공대쪽은 한밭대가 역사가 있는 국립대라 좋아보였고 장학생이라 등록금도 부담이 없었다.
사실 공주대 등록금은 100만원 정도로 사립대의 삼분의 일수준...장학금도 나온다.

아들녀석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한밭대는 대부분 대전애들이라 적응하기가...공주대는 친한친구들이 가서 좋은것 같아유.>
그래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도 있듯이...
예산과 공주는 가까운 동네처럼 느껴지니 친근감이 있는가 보다.

대학은 자기 하기나름으로 열심히 하여 자기의 실력을 쌓아가는것이 더중요하다 생각했다.
사실 내가 기계공학을 전공하여 자식은 안했으면 했다.
기계를 배워서 현재 내위치가 노후에 까지 연장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에 자식은 노후까지 연장되는 직업을 갖길 원했다.

생각하면 노후에는 늦게까지 직업을 갖기보다는 남은인생 취미생활을 하며 즐겁게 지내야 최고로 생각한다.

집사람, 아들과 함게 셋이 캠퍼스를 돌아보며 아들녀석이 돌아다닐 길들을 함게 걸었다.
아들녀석이 예산에 내려온건 서울 영동중학교 1학년 마치고...중학교 2학년부터 이곳 예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남들은 애들교육위해 서울로 이사가는데 난 애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에는 경쟁이 없다.
그러니 자연히 자기혼자와의 싸움이다.
학원을 보내도 가지않고 자기 혼자 해낸게 가장 대견하다.
<학원에 가두 도움이 안되요>
항상 학원가라하면 하는 대답이었다.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을때마다 아들을 포근히 감싸안아주었다.
<그래 잘했다. 대학가서 부터 시작이다.>
<주사위는 던저졌다.>
<이제부터 대학에서 너의 길을 찾아야한다.>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너만의 특기를 개발해라>

고개를 끄떡이는 녀석...
<한번 해볼게유>
이제 다컷다.
믿음이 간다.
<지금처럼 해냈듯이 잘해야 한다.>

방을 얻으려 공주대 뒷골목을 이리저리 다녔다.
아들녀석은 싼방도 좋댄다.
한번은 허름한 화장실도 없는 시골집 같은곳도 갔는데...
<이런곳도 좋아유>
아빠의 호주머니를 생각하는 녀석...
최소한 깨끗한 원룸에서 생활하게 하고 싶어 그냥 나왔다.

새로지은 원룸들이 많다.
그래도 깨끗한 집과 가격과 생각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원룸집주인들... 내나이 또래들이다.


여학생을 선호한다.
<남학생은 술먹고 떠들고 골치가 아픈적이 많아서...>
공주대에는 여학생이 많다.
그래서 우선은 여학생이 방관리를 잘해주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말을 하는곳에선 아들녀석은 입이 나온다.

많고 많은 원룸들...
결국 지은지 2년 조금넘은 깨끗한 곳에 결정을 하고 계약을 했다.
우리 아버지 나이의 할아버지 집주인이 가장 맘에 들었다.
방세도 작년과 똑같은 수준으로 하는 배려도 고맙게 생각했고...
아들도 맘에 들어한다.
맞은편에 있는 공주대 선배누나도 맘에 든다.
친절하게 여러가지를 말해주었다.
일년치 방세를 받는다. ...이백오십만원...
등록금과 일년치 방세를 합해도 사립대 등록금뿐이 안된다.

부모곁을 떠나본적이 없는 아들녀석...
일주일이상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이제 떨어져 산다고 생각하니 맘이 이상하다.
다커서 둥지를 떠나는 새들처럼...
혼자 어두운 캄캄한 세상에 내논 기분이다.

<잘해보거라...이제는 네가 모든걸 살아가는 법을 배워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