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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서울우면동 생활

세월따라 변한 나의 취미

글쓴년도: 1996년 올린곳: 하이텔 베스트5 제목:추억속에 나의 취미 best5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취미가 있게되고 또 세월흐르면서취미도 변하는 것을 느낀다.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나의 취미생활의 주요한 몇가지를얘기하고자 한다. best1: 통기타에 미쳐있던 고교시절 실업계고교를 다니던 그당시 나는 대학교내에 학교가 같이 있어 일찍부터 대학생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날 같은 캠퍼스에 다니는 대학생선배 한사람과 통학하는 차안에서 같이 가고 있는데 그형이 열심히 외우고 있던 가사"하얀손수건이란 가사였다". 나는 무슨 노래인지 모르지만 그형이 엊그제 처음 들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댄다. 그래서 나오는대로 가사를 적어 보았는데 한번 라디오 에서 나오면 꼭들어 보라고 한다. 68년인가 69년에 송창식과 윤형주 튜윈 폴리오의 노래가 처음 나오자 그때부터 통키타 가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기타학원에 부모님 몰래 다니며 키타도 배우면서 키타를 치기 시작했고 시간만 나면 코드 외우느라 나의 손가락은 성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야외만 나가면 키타를 꼭 가지고 가고 배우는 실력을 발휘할겸 열심히 키타를 치며 통키타 노래를 그렇게 불럿다. 그때 전석환씨의 다함게 노래부르기 프로가 유명해 그사람 노래책장이 �떨어질때까지 불러댓다. 일요일이면 친구네 자취방으로 하숙방으로 다니며 그때의 포크송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best2:해외펜팔과 우표모우기 이는 군대를 갔다와 복학하면서 철이 들면서 영어에 한때 미쳐있었다. 공대를 다니던 나는 하루도 영어책을 놓아 본적이 없던 것 같다. 70년대 조그만 녹음기가 없어 큰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며 조그만 이어폰 을 끼고 듣기 공부한다고 버스속에서도 걸어다니면서도 영어공부를 해댔다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를 보고있었는데 그영자신문구석에 한국인 펜팔을 원하다는 란이 가끔 실렸다. 아, 요거구나 영어공부하는데는 펜팔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해외 펜팔을 시작했는데 어느 프랑스 할아버지와 펜팔하면서 그할아버 지 취미가 우표수집이어서 꼭 우표를 보낸달랜다. 열심히 새로운 우표가 나오면 사서 보내고 모으고 하다보니 우표수집에 미쳐 버렸다. 그래서 해외 펜팔의 영역을 넓혀서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 를 가리지 않고 펜팔을 원하면 모두 보냈다. 그래서 배우기시작한게 영문 타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에서 마침 타자 학점이 교양선택으로 있어 배울겸 시작한게 그인연 이 지금은 타자기공장 생산부장이 될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열심히 편지를 보내고 오고 가능하면 우표를 보내달라고 하고 그때모은 우표만도 꽤 많이되었다. 그런데 요즘 어느날 국민학교에 다니는 내딸이 신기한 우표책이 있으니 친구들이 오면 자랑을 한게 탈이 나 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우표책이 사라져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그책을 가져간 내딸친구에게 고이 잘 간직하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언젠 가 느끼면 되돌려 주겠지하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해외 젊은 여성과 펜팔을 하다보니 그여성 과 사랑에 폭 빠져 버린적도 있엇다. 몇년을 같이 글로 사진으로 보내다 보니 아이러브유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국제결혼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글은 내마누라가 보면 안되는데... 하여튼 뉴질랜드 중국계아가씨와 열애의 편지를 나누며 조그만 선물도 주고 받은며 지내다가 결국은 지금의 지금 집사람을 만나게 되어 해외 펜팔도 자동으로 끝이나고 말았다. 지금도 살아있을런지 프랑스 할아버지소식이 무척 궁금하다.그리고 그 뉴질랜드 아가씨 아니 지금은 아주머니가 되었겠지만... 나하고 결혼하자고 하더니 어찌되었는지.... best3: 나의 햄[HAM]생활 아마츄어 무선시절 지금도 약간 미련이 있는게 아마추어 무선 햄생활이다. 처음으로 알게된것은 울산의 현대차 직장생활 시절 대학선배한분의 집을 방문 해보니 무전기로 해외와 교신하는걸 보고 외국어에 흥미있던 나는 당연 히 큰관심을 갖을 수밖에...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자격증을 따고 하는지 알아보고 당장 책을 샀다. 무선자격증 시험 공부 시작을 바로 시작하였다. 그놈의 외국어 때문에 나는 직장을 전공과 다른 무역회사로 바꾸고 서울 로 올라오면서 바로 무선사시험에 합격하여 햄생활을 시작... CQ.CQ,CQ 고지라와 HL1AKD... 나의 호출부호 HL1AKD... 아직도 내 호출부호가 살아있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내호출부호를 사랑했다. 지금도 미련이 있지만.. 결혼하여 펜팔을 안하게 되면서 자연히 무전기앞에서 살았다. 당연히 일본어 공부를 날마다 하게되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매일 교신하여 친구도 사귀게 되고 지금 부모님이 살고계신 상도동집 옥상에는 안테나 투성이로 옆집 목욕탕 굴뚝 꼭대기 까지 용감히 올라가고 안데나를 걸었다. 더 멀리 미국 유럽과 교신하기 위해... 일요일이면 햄때문에 안데나와 살고 동호인들과 정보교환하느라 방문하고 하여튼 이생활은 사우디 건축자재 장사하러 떠나기전날 까지 계속했다. 그때 마누라에게 좀 소홀히 한점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햄생활도 사우디생활 일년 넘게 하다보니 수그러들고 귀국하여 새로운 현재 직장을 갖게 되면서 취미도 바뀌게 되었다. best4: 바다 낚시에 빠져 버렸다. 십여년전 현재의 타자기회사로 다시 전공인 이공계통으로 오면서 만난 직장 동료가 권한 바다낚시에 한번 가본게 그만 몇년동안 일요일 휴일이면 서해안 바다로 차를 몰곤했다. 마누라에게 부모님에게 가족들에게 위험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으면서 당시 내중고차속에는 바다낚시 도구가 항상 들어있었다. 돈이 있으면 배를 타고 모자르면 갯바위에 앉아 바다고기를 그렇게도 기다렸다. 요즘은 일년에 한두번으로 가긴하지만 바다가 황폐화되는 걸 느낀다. 그만큼 환경의 파괴는 심각함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 낚시는 별로 구미 가 안댕긴다. 바다고기가 해마다 줄고있고 바다가 황폐화 가는 걸 너무나 느끼게 되는 요즘 정말 환경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best5:역시 산이 가장 좋더라. 요즈음의 내취미다. 매일 아버지의 말씀이 산이 최고다 바다는 그만가고 산에다녀라 하는 얘기를 낚시를 좋아할때 많이 들었는데 역시 산이최고 라는걸 요즈음 느낀다. 산은 그리고 자연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다. 우리도 언젠가 한줌의 흙이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산을 가까이 하게 되는가 보다. 산에 관한한은 이 베오란에 엇그제 올린 산이좋은점 best5에서 얘기 했으므로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