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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서울우면동 생활

새해에 생각나는 친구들....

작성년도: 1996년 올렸던 곳: PC통신 하이텔 베스트5 제목: 한해를 보내고 새해에 생각나는 친구들... 항상 어른들 말씀중에 세월이 참 빠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죠.. 벌써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군요. 저도 어렸을때는 실감을 못했는데 정말로 사십이 넘어 살면서 부터는 그말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자주하는 말중에... "아니 벌써..." 합니다. 벌써 친구 자식이 대학간다고 하고... 벌써 그녀석 머리가 하얀색으로 변하고.... 벌써 내자식도 키가 엄 마보다도 크고.... 참 빠른 세월중에 지나온 내친구들을 분석해 볼까 합니다. ?코흘리개때 만난 친구들? 첫번째 만난녀석들 태어난 곳은 서해안 바닷가 시골... 민족의 살육의 한국전쟁이 끝났을때라 춥고 배고픈 시절... 하지만 정이 많았던 시절 같다. 한없이 그리운 시절... 마음의 고향이자 영원한 고향인 내가 태어난 시골마을이 눈에 선하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긴긴밤 기 름 호롱불밑에서 이불속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던 추억이 가끔 떠오른다 가끔 집사람에게서 잔소리 듣는것중에 하나... 이불을 많이 펴고 방안 에 이불이 가득한 걸 좋아한다. 겨울철에는 항상 방에 이불이 펴있 었고 그이불속에서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던 기억이 새롭다. 여름철에는 집밖에 밭두렁에서 만나 노래도 부르고 캄캄한 밤중에 친구들과 참외서리도 하던 생각도 난다. 그런 친구들을 만난지도 오래된 것 같다. 특히 어린시절에 같이 코흘리개로 만났던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서울로 이사온이후 소식이 뜸하다가 고향의 마을이 공군 비행장으로 되면서 몇개마을이 없어지자... 모두 뿔뿔히 흩어져 살고있다. 최근에 고향근처에 갈기회가 있어 해미에 살고 있는 한두친구를 만나 보면 누구보다도 반갑다... 그저 그친구를 보면 옛날의 어린시절 그 모습만 기억만 날뿐 현재의 그모습에 전혀 다른세상의 사람처럼 느껴 진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만난 느낌을 갖는다는 얘기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만 안된다. 이미 그때 그마음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는걸 몇마디 인사하며 헤어지면 서글픈 마음이 된다. 서울에서 오래살았지만 시골에서 살았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 은 마음이 가득한건 웬일일까? 그때의 순수한 마음... 순진한 행동은 어디로 가고 너무 계산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지금의 내가 된건 너무 경쟁사회에서 물들어 있기 때 문인것 같다. 하지만 마음만 그럴뿐 행동과 습관은 도시생활화 된 나를 바꾸기가 쉽 지는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중학교때 만난 친구들? 두번째 만난 녀석들 코흘리개에서 털이 송송나기 시작하던 그시절... 꿈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고 갈등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던 시절... 그시절에는 못먹고 못살던 시대라 상급학교 진학하는것도 그리 쉽지가 않았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들어간다는건 한마디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우선은 등록금이 있어야 하고... 중학때도 입시가 있던 때라 공부를 못하면 입시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하여튼... 부모를 잘만난덕에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몇명을 친 구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들... 4 명이 있다. 그들과의 추억... 중학교 3학년때 상급학교 진학으로 고민의 고민를 하던 때... 상급학교 진학은 우리의 운명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십오리길을 걸어 통학하던 우리는 한시간이상을 통학길에 소비하고 힘들게 걸어다니던 시골통학길이 무조건 낭비의 시간으로 생각하게 되 었다.. 누구의 제안인지도 모르겠지만 4명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기 로 결정하고 부모의 허락을 받기로 했다. 생각하면 참 어린녀석들이 그런 결심을 했는지... 나도 어럽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내고 다른 3명도 허락을 받아내 학 교근처 허름한 집 방한칸 빌려 자취를 시작했다. 나무로 불을 땔때라 토요일 일요일이면 학교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밥을 할줄몰라 태우고 주로 반찬은 집에서 가져와 먹고 긴기간은 아니 었지만(2개월)... 너무나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밥태워먹고 밥하기 귀찮아 호떡빵을 사먹던 기억... 그렇게 식욕이 왕성 했던 녀석들이 어렵게 살았던것 같다. 그동창녀석들 4명이 모인지는 몇년전... 이제는 매월 회비도 적립하고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상태... 현재 가장 왕성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게 중학교때의 이 4명의 친구들이다. ?고교때 만난 친구들? 내가 진학한 학교는 실업계학교로 졸업후 취업을 목적으로 기술을 배 우기로 하였다. 인문계와 실업계의 특징을 모르고 그저 고등학교에 가면 된다는 마음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가장 빠른길은 인문계에 들어가야 한다 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고... 많은 학생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인문계 로 전학하는 걸 많이 보았다. 그래도 서울에 올라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기양양... 각지역 친구들... 서울근교의 출신학생들과는 여러가지 틀린점을 발견 할수 있었다. 자연히 시골 출신애들은 끼리끼리 모이고 도시아이들은 그들대로 끼리 끼리 모이고... 그중에서 고교때의 추억이라면... 친구 몇명이 무전여행을 해봤다는 것... 완전 무전여행이 아니라 조 금의 경비는 가지고 떠났지만...일학년때는 배을 타고 제주도로 여행 을가서 도보로 제주를 보름동안 일주한 추억이 새롭다. 2학년에는 친구 셋이 강원도 간성에서 부터 경상도 울진까지 걸어서 여행한 기억이 생생하다. 걷다가 목마르면 어느 시골집에 들어가 물한잔 얻어먹고 날이 어두워 지면 그때 군용텐트 2인용에 셋이 들어가 자기도 하고 재워주는 집이 있으면 민박도 공짜로 하던 그때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 요즘에 얘기하는 배낭 여행... 국외는 불가능하니 국내 강원도 배낭여 행을 한것이다. 어떻게 구한 싸구려 카메라도 찍은 흑백사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그사진을 보면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다고 딸래미가 놀 린다.. "그래.. 그때는 그렇게 사는것이 가장 평범한 것이었단다."내 가 말해주지만 믿을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때 항상 느낀것이 있다면 물맛은 역시 강원도가 최고라고 생각한것 이었는데 이는 지금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때 두친구중 한사람은 대학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있고 한사람은 창 원에 있는 H중공업의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런 추억을 나눈친 구가 오래가는것 같다. 모두 떨어져 살으니 가끔 전화로 안부나 전하는 정도다... 역시 아무 리친했더래도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것... ?대학때 만난 친구들? 네번째 만난 녀석들 가장 성숙해서 만나는 사람들... 토론도 많이 하고 같이 울분도 토로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기회가 있 을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자기에 대한 주관이 어느정도 서있고 이성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접할 기회가 있을때인 만큼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때인것 같다. 군대 제대전후하고의 생활이 전혀 다른것이 이때의 생활이다. 가기전에는 동아리생활에 온정신을 집중해 열심이었는데 제대후에는 역시 앞에 닥친 생활 즉 취직위한 도서관 생활이 전부였던것 같다. 하 지만 울분과 감정이 시대를 비판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피끓는 시절... 배고팠던 시절이 서서히 지나가는 순간에 지내온 대학시절... 밤새워 민족을 토론하고 역사를 토론하고 막걸리 한잔두잔 캠프수련회에서 동 아리 친구들과 지내던 그시절... 이제는 그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저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느라 연락 두절된지 오래 되었다. 그때 한추억... 동아리에서 만났던 여학생... 그때까지도 수줍음이 있었는지... 말한 마디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비오는 우산속에서 둘이 1킬로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그녀의 자취방앞에서 그저 안녕하고 헤어졌던 기억.... 차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지만... 참 순진도 하였지.... 그때 잘했더라면 지금쯤 내옆에 그녀가 있을지 도 모르는데... 그저 친구로 생각했었다. 이이야기는 지금의 내집사람에게도 못한 얘기데... 알아도 할수없지 뭐... "당신은 뻔해... 그랬을 거야" 그렇게 말할끼다. 그리고 난 지금의 집사람을 가장 내게 맞는 반려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기에 오해가 없을기다. "늦게 당신을 만난게 행운이구먼" 그때 좀더 이성 친구들과 진실되게 만나 보는건데.. .아쉬움이 많은 대학생활 이었다...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했지.. ?군대에서...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다섯번째 만난 녀석들 참 어렵게 군대생활 하였다. 졸뼝 수송부에서 근무한 나의 군대생활은 열료고 뒤에서 요즘처럼 찬 바람 쌩쌩부는 영하의 날씨에서 팬티바람에 기합받던 기억이 요즘에도 가끔 꿈속에 나타나곤한다. 그시절에 만났던 두친구가 있다. 비슷한 나의 동기생... 고참들에게 얻어맞고 취침시간 모포속에 두손을 꼭잡고 참자며 울분을 삭이며 잠들었던... 두친구... 우리 셋은 제대할즘... 이어려운 군생활 우정 절대 변치말자며 서로 명패를 만들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때 내가 대학군사훈련 혜 택을 받아 두달 먼저 제대하게 되자 그친구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보내 주었다... 그때가 벌써 20년이 흘렸다. 지금도 가끔 만난다.. 너무나 성실한 녀석들이기에 가정에 충실하고 생업에 열중들이다. 자주 못 만나는 편에 들어가는 군대친구 둘이지만 우정만은 변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사회생활하면서 즉 직장 생활하면서도 또 사람을 만나고 있다. 정을 주고 서로 아끼고 생활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건 참 좋은것 같다. 해외에서 근무할때 만났던 L형이 있다. 나보다 열살이 위인 L형은 힘들던 외국생활을 잘적응하도록 옆에서 항 상 코치해주고 밥도 해주고 휴일이면 좋은곳을 안내하던 나의 해외생 활 코치선생님이었다. 나보다 몇년을 더한 해외생활의 경험으로 나 를 인도하던 L형... 지금은 천안지방에서 건설업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자식들도 대학 을 졸업하여 곧 결혼시킬준비 하느라 바쁘다. 가끔 잊어먹을 때쯤이면 전화을 걸어온다. "어이! 미스터 리... 야 이사람아! 집에 한번 놀러오라는데 왜그리 안와? 외국에선 오라구 안해두 매일 오더니만... 연락 좀 하구 지 내자구..." 고향을 갈때 그분이 사는 천안을 지나면서도 그냥 지나쳐 오곤 한다... "살다가 보니 바뻐서.. 죄송하구먼유" 사회생활하면서 많은사람을 만났지만 이얘기들은 다음에 하기로 하지 유...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혜어지고 하는 모습을 그려 볼려고 했는데... 하고보니 별로 특이한 얘기도 없네유~ 그저 제얘기 이고요... 여러분들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변치않는 우정을 만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