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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동창 이야기

초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하며

언암 총동창회에 참석하면서... 삼일절.... 일제에 항거하여 만세운동을 했던날... 나라를 잃고 그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만세 운동을 했던 그 옛날 우리민족의 절규하는 한많은 가슴을 생각해본다. 아!! 아직도 지구상에서 반쪽으로 된 슬픈 나라... 언제난 이 아픔이 치료될 것인가? 한국전쟁때 태어난 우리세대도 희끗한 머리가 되가는데... 빨리 국론이 통일되고 하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참으로 오천년 역사에 피맺힌 한을 가진 민족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언암초등학교 총동창회... 올해로 57회 졸업생을 배출했단다. 언암초등학교 선생님이시던 사촌형 이창로선생이 언암1회 졸업생이다. 초대 총동창회장이던 또한명의 사촌형 길영형은 언암3회 졸업생이고 우리 4형제도 모두 언암을 나왔다. 중국 외국어대 한국어과 교수로 근무중인 큰형은 8회...둘째형 11회... 내가 14회....내 동생이 16회 두여동생은 언암초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가서 졸업생이 아니다. 6남매가 모두 언암과 인연을 가지고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언암리는 지금 군비행장으로 되어 일년에 딱 한번 가볼 수가 있는데... 그날이 바로 초등학교 총동창회 하는날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언암리... 생각만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쓰리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왜그리도 옛날의 솔밭속의 우리집이 생각나는지... 우리집 솔나무는 크고 잘생겼다. 그 나무밑에 떨어진 솔걸하나 버리지 않고 땔감으로 쓰곤했는데... 가까이에 있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서 그런지 싱싱하게 잘 잘라던 솔나무들이 형제들처럼 하나하나 모두 내 가족 같은데.... 지금은 허허벌판 비행장 활주로로 되버렸다. 양지바른 우리집의 마당은 동네 친구들의 놀이터이었는데... 땅치기, 제기차기, 숨박꼭질 겨울철이면 친구들이 우리집으로 출근했다. 그집도 사라지고 이웃친구들의 집도 논밭도 사라진 고향땅.... 동창회때 만나면 모두 옛날의 고향땅이 사라지고 변해버린 아픈 가슴을 서로 다듬어주며 위로를 받는다. 고향이 사라져도 우리동문들이 남아 있지 않으냐며... 그어느것도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언암초 총동창회는 공유되는 아픔,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컷던 추억이 교차되는 모임이다. 앞으로 3년있으면 개교 60주년 되어가고 주위의 군부대 아이들로 우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옛날 갯마을 시골뜨기에서 보라매의 엘리트 자식들로 변해버린 언암의 세대가 자랑스럽다. 해미중에 진학하면 모든 간부를 독차지한다는 언암의 아이들... 세상은 변해도 언암의 전통을 이어가는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그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고향땅 잃은 슬픔을 위안하고 싶다. ---------------------------------------------- “^^**언암의 선배님... 그리고 후배님... 총동창회에서 여러분을 만나면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어릴적 모습은 사라지고 빛깔이 변한 얼굴들... 세월의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 모습들이지만 순진한 바닷가 소녀 소년의 냄새가 아직도 새어 나옵니다. 나이는 늙어가도 항상 우리 고향땅에서 자란 흙냄새 맡으며 하루를 같이 지냈지요. 나보다 1년후배 15회 동문들이 많이 나왔더군요. 단지봉의 문기정후배...오랜만에 보고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마애삼존불, 청산에 뜬구름... 모두 인사를 나누는 기쁨을 가졌고 1년 선배, 은구, 내조카 효석이, 3년선배 형님친구분들, 2년후배 동생 친구들, 동네에 살던 친척 정화도 정말 반가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항상 4형제가 모두 참석했었는데... 올해는 큰형님이 중국대학에 한국어 교수로 가셔 못오시고 막내동생도 결혼식 참석으로 작은형님만 만났지만 다른 모든 동문들 형제자매나 똑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모두 건강지키고 언제나 동창회에서 밝은 모습으로 만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살조개를 비롯 떡과 과일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비행장에선 올해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항상 비행장을 한바퀴돌고 옛 학교자리만 보여주었는데... 올해는 전투기 격납고를 구경시켜주고 비행하는 우리의 공군의 장비를 설명해주는 성의와 정성어린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바로 우리집이 있던 그 자리에서... 내가 살았던 초가집과 마당... 솔밭이 있던 그 자리는 공군의 전투기 격납고로 변해있었다. 활주로 한복판에서 있었던 공군대령 작전실장의 설명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공군 대령의 설명의 요점을 말한다면.... “본인은 공사를 나와 전투조종사로 지금까지 근무하지만 고향 잃은 여러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충남 서천이 고향으로 고향을 갈때마다 초등학교와 살던집을 둘러보며 추억이 묻어나와 가슴이 저리곤 합니다. 여러분이 고향의 터전을 잃고 나간 덕분으로 이 공군부대는 우리나라에 가장 큰 공군력의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땅에 주둔하는 미공군의 3배의 전력을 가지고 있으며 최신의 설비와 장비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공군비행장으로 국토방위에 최일선에 서있습니다. 이비행장에 근무하기 위해선 공사에서도 상위 30%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야만 가능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로 평생을 받쳐 일하고 있지만 최신예 전투기로 국토방위을 한다는 보람으로 자랑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제자식도 언암초등학교를 나와 지금 해미중학교 다니고 있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고향처럼 생각되는 좋은 곳입니다. 주위 주민들에게 소음으로 고생하는 것 하나만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마침 임무 수행 작전을 마치고 오는 전투기 2대가 있었다. 활주로에 내리자 조종사에게 지시를 내려 언암 동문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비행기를 몰고 오도록 했다. 요란한 소음을 내며 두 대의 전투비행기가 가까이 앞에서 지나가며 조종사가 우리들에게 경례를 한다. 자랑스런 우리나라 공군 파일럿이다. 삼일절 나라를 지키는 그들을 보니 박수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옛 학교자리에 또 왔다. 작년에 이어 또 한번 와본자리이지만 항상 마음은 설레인다. 옛날의 어린시절 짝사랑하던 친구를 만나던 때처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체가 모여 기념찰영을 하였다. 학교자리 기념탑을 배경으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운동장에선 공군의 용사들이 축구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옛날 우리들이 공놀이 하며 놀던 모습 그대로... 단지봉과 그옛날 집자리의 대나무밭은 푸른빛을을 더하고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찰영이 옛날 학교 자리에서만 가능해 몇컷트 찍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총동창회장님이 박명희 사촌오빠로 언니 동생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14회 동창친구들....용복이 기홍이 나,, 명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3회 후배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 카페에 들려 복사해 가라고 하면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행장 구경은 내짝꿍 박명희와 항상 같이 하며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14회 동창친구들... 두현이 용복이 기홍이와도 자리를 같이하며 옛추억의 가슴저린 이야기도 나눴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같이 하는 시간은 항상 옛날의 어린시절이 생각나는게 때로는 행복하기도하고 세월가는게 슬프기도 하다. 멈추지않는 우리들이 육체변화.... 한해를 보내면서 조금씩 우리는 늙어갈 것이다. 병들어 이런자리를 못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하늘나라에서 오라하면 가야할 것이다. 그때까지 명랑하게 어린시절의 꿈 그대로 간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행장 견학을 마치고 언암 운동장에 돌아왔다. 언암 1회 졸업생인 우리 동창 정례 오빠가 만세 삼창을 선창했다. 모두 언암 만세를 외쳤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창모임이 끝나고... 명희와 같이 간척지로 변한 삼섬 앞바다에 가보았다. 옛날 시골집 명희네 솔밭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명희네 집은 완전 바닷가로 밀물이 들어올때를 바람으로 알았댄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 바람이 명희네 집으로 스며들어 오곤했댄다. 저녁이면 자장가처럼 파도소리가 들리던 집... 솔밭은 그 옛날 그대로 있건만 지금은 가볼수없는 군사지역이다. 다행인건 옛날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명희와 같이 어린시절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진 몇컷 찍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 느낀점이지만... 우리가 살았던 자리는 너무나 좋은 명당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서쪽으로 되비산이 우뚝 솟아나있고 동쪽으로 가야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 앞에서 출렁이는 파도소리,,,, 갯내음이 나는 좋은공기를 마시며 자란 우리 동네...언암리,석포리.기지리 신정리... 지금은 우리의 국토를 지키는 공군이 그 자리를 이어가고 세상은 멈추지 않고 잘 굴러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월은 가지만 어린시절의 순수한 감성은 그대로 있다. 검은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변색시키면서 아침해 처럼 솟아올랐던 희망도 사라진 아름다운 갈색의 노래를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것을 옛날 한아름의 꽃다발로 묶어버리고 세월에 모든걸 맡기고 황혼의 길을 걷는다. 기름진 고향의 갯펄은 간척지로 변했고 바다내음 진하던 고향산천은 비행장으로 얼굴을 바꿨다. 바다위에 떠있던 갈월도 섬에 날아오르던 갈매기도 먼바다로 떠나버렸다. 어느세 세월의 그림자만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 아련히 머릿속을 떠나지않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고향의 그림자.... 노을에 나이에 살고 있어도 못이룬 우리의 꿈이 그리워 다시 모여 노래를 부른다. 동창회의 이름으로.... 누구나 행복한 순간이 영원한 것 같지만 모두 찰나의 순간이다. 우리의 어린시절의 찬란한 빛이 조금씩 캄캄한 어둠으로 되어 돌아오지만 추억에 대한 사랑은 식지않는다. 2008. 03.02 일요일 낮에... 천안/영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