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로의 예산생활 영원한 끈...가족 이영로 2002. 3. 27. 20:41 지난주 일요일... 어머님의 74세를 맞는 생신날...서울에서 우리가족 모두 모였다.부모님,육남매 모든 가족...대식구들이다모두 모이면 28명... 두명이 빠져 26명에 이모님까지 27명이다.이제는 25인승 미니버스로 움직이기 힘들다.몇년전에 미니버스를 빌려 놀러간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결혼하면 하나의 가족이 된다.남편과 아내...그리고 자식이 태어난다.하나 둘 셋...많으면 열이 넘었던 시절...나는 그시절에 태어났다.지금처럼 하나 또는 둘로 끝나는게 아니라 못낳을때 까지 많이도 �았다.자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복이 많다고 생각하던 시절...농사를 짓듯이 자식을 낳아서 길르고 키웠다.누구는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하며 말하는걸 많이 들었다. 누구는 자식땜에 인생을 망치고 자식이 아니라 원수로 된 그런 경우도 보고... 내년이면 팔순이 되시는 아버님...어머님은 다섯살 아래...나의 부모님은 육남매를 두었다.아들 4형제를 나란히 낳으시고 마지막에 딸 둘을 낳으셨다.더 낳을수도 있었지만 조절한게 여섯이 되었다.쉰여섯된 큰형부터 마흔둘이 된 막내여동생까지 모두 시집장가 보내어 손자,손녀해서 열넷이다.모두 모이면 금방 얘기했듯이 부모님까지 28명이다.자식들이 모두 공직에서 4명,전업주부인 큰딸,그리고 제조업회사원 나를 포함 직장생활 충실히 하고 애들 잘키우고 잘 살고있다. 조카녀석들도 이제 다커서 시집장가 갈때가 되어간다.큰형은 대학졸업하여 회사에 다니는 큰딸,의대졸업반인 작은딸,외대에 다니다 군복무중인 아들을 두었다.아직까지는 결혼시키지 못했지만... 둘째형님도 아들 둘을 거의 다 키웠다. 이제 오십이 넘어 아들녀석이 대학에 들어가니 새삼스럽게 부모님을 보게된다. 우리 부모님은 한둘도 아니고 육남매를 모두 대학을 가르키셨다.그중에 막내아들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내가 학교를 다닐때 아버님은 약봉지를 항상 가지고 다니셨다.병명은 신경성 소화불량으로 위장염이셨다.조금만 신경써도 소화가 안되어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를 받고 커더란 약봉지를 가지고 오셨다.가지가지색의 약 몇십개를 한꺼번에 드시는걸 몇년동안 보곤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그게 모두 우리들 자식때문이었던것 같다.큰형이 대학다닐때...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때 시골에서 농사져서는 애들교육 못시키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쌀장사를 시작했었다.애들교육과 장사를 시작해 여러가지 부닥치는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인해....아버지의 위장은 항상 정상으로 소화시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힘들었던 시절...아버지는 몇번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던걸 기억한다.<니 할아버지가 환갑을 일년 앞두고 돌아가셨으니 아마 나도 그럴지 모르겠다.>그때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지금 살이 붙으신 얼굴보다 너무 다른 모습이다.쪽마른 얼굴...북한사람들의 사진에서나 볼수 있는 광대뼈가 나온 모습... 정말로 큰병에 걸리지나 않으실까 조마조마하게 십여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속이 좋아지기 시작했을때는 육남매를 다키우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나서 거짓말 처럼 위장병이 사라졌다.환갑잔치를 하고 몇년후엔가... 십여년 넘게 그렇게 많이 드시던 약봉지를 어느 한순간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에서야 아버님의 그때 어려움을 알게되었다.그많은 자식을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마음 고생을 하셨을까 이해가 된다.커가는 애들...한둘이 아니고 여섯이나 되는애들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하는일에 심신이 항상 지쳐있었을 것이다. 옆에 계신 우리 어머님...사실,우리 가정을 이끄신 분은 우리 어머님이시다.생활력이 누구보다도 강하시고 애들에게 이해심이 많으신 우리 어머님...새벽부터 일어나 자식들 도시락싸고 장사준비하고 저녁늣게까지 가게에서 마직막 정리까지...모두 어머님 몫이다.누구보다도 자식들에게 이해심이 많으시고 속마음을 담아두지 않으신다. 어머님이 건강하신건 스트레스를 몸에 담고 있질 않으신 덕택이다.맘에 안들면 그때 그때 큰소리로 말하시는 어머님...며느리들에게도 맘에 안들면 그대로 혼을 내신다.그런 직선적이신 어머님...그래서 아버님과 많이 싸우시는 모습을 보았다.싸우실때 나는 어머님이 조금만 참으면 될텔데 하는 생각을 많이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어머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것인데... 속에 화를 품지않는 행동...현명한 어머님의 판단이었다.우리 어머님의 특징...속에 품지말고 털어내는게 사실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한국인만이 가진 화병이 어머님에게는 없다. 우리의 대화창구는 항상 어머님이었다.아버지에게는 대화가 잘 안통하니 약하게 보이면서도 강했던 어머님에게 애로사항을 말했다.그러면 대부분 문제가 어머님을 통해서 올라가 결재가 난다.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어머님이 하신다. 아버지는 막내로 커서 그런지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은 반면 어머님은 팔남매의 가장 위사람...장녀였다.지금까지 아버님의 행동하시는것을 보면 아직도 막내티가 보인다.책임감이 강하시고 리더쉽이 있는 8남매의 장녀였던 어머님과 손이귀한 부자집 4남매의 막내로 자란 아버지...아버지의 성격은 내성적으로 여린마음에 속마음를 털어내지 않으신다. 이제서야 내가 부모가 되고 애들을 키워 아비의 입장에서 보니 옛날의 부모님의 고충이 보인다.부모님에게 반항적이었던 어린시절...결혼해서 조금씩 부모님을 이해하기 시작하여 지금이 되서야 완전히 부모마음을 알게 되었다. <항상 덕을 쌓고 살아라...언젠가는 돌아오니 남에게 피해주지말고 항상 손해본다 생각하고 살아라!>어머님이 자주하시는 말씀이다.어머님생일을 맞아 온식구가 식사하고 노래방 큰방을 택하여 몇시간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가족의 화목이 부모님게 가장 효도하는 일인것 같다.환갑도 못살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우리 아버님...가리는것 없이 잘드시고 건강하시다. 자식들이 속썩이지않고 건강하게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부모님의 건강비결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의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것이 바로 효도의 기본이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이영로의 삶의 일기... '이영로의 예산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행... (0) 2002.04.06 귀농...시골생활 (0) 2002.03.31 결혼이란...해도후회 안해도 후회 (0) 2002.03.20 봄의 향기를 느끼며... (0) 2002.03.17 어느 두 젊은 친구. (0) 2002.03.10 '이영로의 예산생활' Related Articles 동행... 귀농...시골생활 결혼이란...해도후회 안해도 후회 봄의 향기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