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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천안생활

어머님의 49제 행사로 덕산산소에 다녀왔어요.





토요일,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49일이 되었습니다.
93년의 세월을 사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월요일이면 어머님 뵙는날을 정하곤 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부천에 사시는 어머님을 뵙기위해 2년동안 올라갔습니다.
일주일의 큰 행사이기에 미리 정해놓고 일주일의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미국여행을 하기위해 비행기에 올랐는데 큰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여행중에 돌아가시면 미국여행중에 돌아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비행기는 이륙준비를 완료하였기에 내리기는 너무 늦은 상태였죠.
그대로 미국을 십일넘게 여행하면서 조마조마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에 돌아와서 그때부터 어머님의 병환이 심상찮아 일주일에 한번씩 올라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어머님집에서 자는일을 해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줄이 그렇게 긴것은 어머님을 돌봐드리면서 알게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계실때 항상 내려오며 이번달은 못넘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오늘내일하시면 집에서 병과 싸움을 계속하시길 2년여... 막내여동생이 집을 지킬때 생명줄을 놓으셨습니다.
49제 산소에 와서 막내여동생이 마침 손주와 함께하기라는 책자를 발간하면서 술한잔을 따라드렸습니다.
그리고 통곡을 했습니다.
막내딸이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좋아하시고 더 잘되는것을 보시겠다고 하더니 돌아가셨다면서 마지막순간을 되뇌이었습니다.
삼우제 지내는날 까마귀가 날라와 같이 울더니 이번에는 저희 형제가 있는 곳을 한바퀴 날아 돌더니 사라졌습니다.
어머님의 영혼이 저희 주위에 까마귀를 보내신 것 같았습니다.
6남매중 홍로가 직장관계로 참석을 못하고 5남매가 절을 올리고 영혼이나마 편안히 가시라고 했습니다.
항상 자식이 최고의 우선순위였던 어머님, 이제는 그런 돌봄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늙어가고 십년,이십년후면 같이 하늘나라로 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