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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예산생활

희귀동물...

일하는 젊은이...
젊은이 하닌깐 그럼 난? 늙은이? 이제 오십이 넘어섰으니 젊은이라고 하긴 조금 문제가 있는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젊은이라고 하는것은 요즘 일을 시작하는 20대 젊은이를 말한다.

시골에는 20대 젊은사람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골들녁에 나가도 대부분 머리가 희긋희긋한 노인네 들뿐이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20-30대 젊은이가 없다.
대부분 40-50대의 젊은이가 논농사를 짓는다.
경운기를 비롯 기계농사로 일을 하지만 60를 넘은사람은 기계를 잘 다루질 못하니 구경꾼이 된다.
어쩌다 20대 젊은사람이 농촌에 있으면 희귀동물로 쳐다본다.
<어쩌다 시골에서 살게 되었담?...쯔쯔...>

걸어다니는 들판에 20대 젊은이가 나타난건 일년전쯤...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지는 육개월쯤 된다.
하우스농사를 짓는곳을 매일 아침 지나가는 나를 그는 본 모양이다.
그친구도 매일아침 그곳을 지나가는데....나를 희귀동물로 본모양이다.
<매일 아침 혼자 들판길을 걸어다니는 50대 중년남자...운동도 아닌것 같고...이상타>
그흔한 차를 두고 걸어다니는 중년남자...바로 나다.

나도 그가 하우스 농사짓는곳에 나타나...그를 희귀동물로 보았다.
<시골에 몇일 부모님 돌보러 왔겠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몇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아침일찍 하우스에 들락거리며 물을 주고 농약주고 공기를 준다.
공기를 준다는 말은 환기를 시켜준다는 말이다.
<새파랗게 젊은친구가 이 시골에 뭍혀 살는것 참 이상타...>
수박농사며 파농사며 당근농사며 그는 봄여름가을겨울 하우스를 떠나지 않았다.
6개월가까이 지나다니는 나의 정체를 그가 먼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느날은 나에게 아침에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고개를 끄떡이며 답례를 하고...

한국사람은 눈이 마주쳐도 인사를 쉽게 하지않는다.
인사를 먼저하며 체면이 깍이고 혹시 미친사람이 아닌가 쳐다보기에...
그와 나도 인사하는데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되지않아 저녁퇴근길에 그친구가 말을 건다.
<매일 어디를 출퇴근하는것 같은디...>
<예...저쪽 들판건너 큰 건물 보이지유...그회사 댕겨유>
<그렇구만유...>
궁금증이 풀렸으니 속이 시원한지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 시골에서 계속 하우스 농사 지을거유?>
<아버지가 아프셔서 지가 농사짓기루 했슈...>
일찍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나 있는 그친구...집사람이 동의를 다행히 해주어 시골에 내려왔댄다.
서울에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하우스농사도 잘하면 도시의 소득과 별반 다를게 없이 보이기 때문에...
<사람구경하는게 힘들어 사람만 보면 반가운디...아저씨 매일 보면서도 인사가 늦어네유>
성격이 좋다. 먼저 인사한 사람은 그친구이기 때문에...
<시골로 내려온건 다 집사람 덕분이네유... 공기좋고 살기는 시골이 좋다말다유...>
시골생활에 대해서 한참을 토론했다.

그후...이제는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걸어가는 나를 차에 태우려 노력하기도 한다.
<읍내까지 태워다 줄게유...>
<걸어갈겨...그냥가...운동삼아 걸어다니는겨..>
한사코 거절하는 나를 몇번 경험하고는 그대로 지나치지만 차문을 열고 꼭 인사를 나눈다.
젊은친구 성격 좋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친구가 한명도 없을 게다.

혼자 외롭게 농촌을 지키는 그를 계속 보았으면 좋겠고...하우스 농사로 성공을 빈다.
시골에서 사는 젊은사람이 희귀동물이 안되도록 뭔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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