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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로의 예산생활

봄은 바람타고 온다.

어제 퇴근길...
걸어서 들판길로 한없이 걸어가는길이다.
핸드폰이 울린다.
퇴근시간에 울리는 핸드폰은 대부분 집사람에게서 온다.
"나갈게"
집사람도 운동겸해서 가끔 걸어서 들판길로 마중을 나오는데...
차거운 겨울바람이 불때는 거의 안나왔다.

해는 서산으로 붉게 서쪽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고...
들판에도 조금씩 어둠이 물려올 태세로 어두워져간다.
멀리 들판의 논에있는 짚을 태우는 연기를 여기저기서 볼수있다.
이상하게 짚을 태운연기는 싫지않다.
연기맛이 다른것과 다른건 왜그럴까?
옛날 아궁이에서 태우던 추억의 연기냄새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구수한 고구마 맛이 나는것처럼 느껴진다.

농부들이 짚을 태우고는 트랙터로 땅을 뒤집는다.
옛날,소가 하루종일 한자락논을 하던걸...트랙터는 단 몇십분에 해치운다.
인정사정없는 기계화...
송아지가 쟁기질하는 엄마소를 �아다니며 젓을 먹는 모습이 기억난다.
정과 사랑이 묻어있는 농촌일이었는데...
이제는 매연을 뿜으며 요란한소리로 몇분만에 해치우는 농촌일이 별로 재미없어 보인다.

볼에 스치는 따스한 바람...
분명 봄바람이다.
들판을 다니며 느끼는건 항상 바람의 맛이다.
차거운 겨울바람의 맛...매섭다. 사납다.
여름바람맛...숨이 막힌다. 숨쉬기가 싫다.
봄과 가을의 바람...사람사는 맛이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쁨으로 느껴지는 순간들...
특히 봄바람은 따스한 숭늉맛처럼 느껴진다.
목마른 몸속으로 천천히 들이키는 봄바람...

그런 봄바람을 맞으며 들판의 모습도 서서히 변해간다.
어느사이 뱀이 나왔는지 논뚝길에 경운기에 치였는지 징그럽게 죽어있다.
드디어 뱀도 나오고...
쑥도 파릇파릇 대지를 �고 힘차게 올라왔다.

들판에 가끔 꿩도 보인다.
숫꿩이 암꿩을 부르는 요란한 소리도 들리고....
작년에 보았던 꿩알 수난사건이 생각난다.
아마도 안전지대라고 생각해서 알을 낳았던 갈대가 있는 냇둑...
농부가 불을 놓아 갈대를 태운뒤에 불에 탄 몇십개의 꿩알을 보았던적이 있다.
올해는 그런 실수를 하지않았으면 좋으련만...

분명 봄은 찾아왔다.
만물이 생동한다.
땅속에서 땅위에서 물위에서...

그중에 한생물인 나도 대지위에서 움추렸던 몸을 힘차게 놀리며 생동하고...

캄캄한 들판길에 집사람이 점점 가까이온다.
눈에 들어오는 내모습을 보고 손으로 인사를 한다.
만나자 첫마디 인사를 한다.
"봄바람이 너무좋아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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