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르 떨고있는 포도잎2006.7.11 아침 천안/영로
오랜만에 깊은 잠에 깨어 놀란 가슴으로 집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태풍의 바람과 함께 장대 같은 장맛비가 차 앞창문을 때리며 내리고 있더군요.
“여보...빨리 와야해...빨리....”
여간해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아내....
엊그제부터 집건물의 수압펌프가 고장이 나서 아예 교체를 하고 물탱크에
물이 차면 물내리는 발브를 잠그라고 말을 하였는데 갑자기 물이 넘쳐 지붕으로
새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펌프 전기 코드선을 뽑아 놓으라 했죠.
그리고 물탱크실에 물이 차있으니 올라갈때는 전기 감전을 주의하고 위쪽 발브를
잠그라고 했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오라는 겁니다.
나~원참... 별거 아닌것 가지고 놀라서 무조건 오라고 계속 전화를 하니...
회사일 팽개치고 집으로 달려 가고 있는 겁니다.
집에 가니.... 고요하더군요.
덤벙대던 아내는 어디에도 안보이고....
전 우선 펌프실 확인하고 물탱크실에 올라갔습니다.
물넘친 자국이 나면서 다행히 전기선까지는 물이 닿지않았더군요.
잠가야 할 발브를 잠그고 다시 펌프를 가동시키고 물탱크에서 물이 넘치는 것이
사라진걸 확인하며 다 끝내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어디엔가도 안보이고 사라진 겁니다.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순간... 그녀는 빈방에서 슬그머니 나오는더군요.
얼굴이 하얀색으로 변해가지고...
겁이 많은 아내는 내가 물탱크실 감전 어쩌고 저쩌고 하니 집에 큰일이 난줄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전기 합선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지 걱정이 되어 빈방에 도망 가있었던 거죠....
“겁이 왜그리도 많으니??? 나무 올라가는건 잘하면서...ㅎㅎㅎ”
엊그제는 집앞 전봇대에 눌어진 인터넷 선이 지저분하다고 사다리 놓고 올라가
선을 잘라 버리라고 하여 전봇대에 올라가는데..
도저히 난 겁이나 올라가다 그만두었는데... 아내가 올라가 잘랐다는거 아닙니까?
운산 가야산 계곡에 있는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따던 기억이 나면서 한바탕 웃었죠.
회사로 다시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아내가 측은해 보이더군요.
얼마나 놀랐으면 그랬을까?
전화나 해줘야 하겠다 생각하고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이제...안심이 되니? 뭐가 그리 겁이 많아... 나보고 겁쟁이라고 하더니”
“아까는 앞이 캄캄하더라니깐... 내가 잘못해서 그런줄 알고...”
“괜찮아... 별일없으니...안심하고 집이나 잘~지켜라~ 응???”
회사 창문밖에는
어느새 장맛비는 그치고 안개가 자욱하며 비에 젓은
거봉 포도잎이 젖어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 아내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이영로의 천안생활